우리 선희 / 홍상수의 뫼비우스
영화과 졸업생 선희(정유미)는 외국 유학에 필요한 추천서를 받기 위해 은사인 최교수(김상중)를 찾아간다.
최교수와 헤어진 선희는 과 동기 문수(이선균)를 만나 술을 마시다 그의 애정 고백을 듣는다.
문수는 과 선배 재학(정재영)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다.
최교수의 추천서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선희는 최교수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 반주를 곁들인 식사 자리에서 교수와 여제자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내가 니 편 되어줄까?’
최교수는 후배 재학을 찾아가 요즘 가슴 설레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재학은 누구 때문에 최교수가 설레는지 모른 체 그의 말을 들어준다.
며칠 후 선희는 과 선배인 재학과 조우한다.
밤늦도록 술을 마신 두 사람은 깊은 키스를 나눈다.
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는 한 여인과 세 명의 남자 이야기다. 남자들이 선희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다른 듯 비슷하다.
선희를 원하는 최교수와 문수와 재학의 목적은 같다. ‘내가 아버지고 어머니가 나고 어머니가 아버지’라는 김기덕의 뫼비우스처럼 '우리 선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 역시 꼬여있다. 즉 문수는 최교수고 재학은 문수고 재학이 최교수다.
홍상수의 작품답게 ‘우리 선희’에는 잦은 술자리 씬이 나온다. 문수와 선희, 문수와 재학, 재학과 선희로 이어지는 술자리 장면은 롱테이크로 담아냈다. 긴 호흡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무척 안정적이다.
홍상수 영화에 첫 출연한 정재영의 전라도 말투가 살짝 섞인 특유의 억양은 작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느낌이다.
구성에 있어 이 작품의 세 남자가 한 여자에게 각각 하는 말들은 마치 홍상수의 전작 ‘하하하’(2010)에서 문경과 중식이 따로 만난 같은 사람들에 대해 나누는 대화처럼 상관을 이룬다.
술자리에서 최교수가 선희에게 ‘내가 니 편 되어줄까?’라고 묻는 장면은 '극장전'(2005)의 영실이 동수에게 ‘내가 니 첩 해줄까?라고 묻는 대목과 겹치며 웃음을 자아낸다.
‘우리 선희’는 말할 것도 없이 전형적인 홍상수표 영화다. 치킨과 소주 만으로 이 만한 상을 차려냈으니 대단하지 아니한가?
2013.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