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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 치명적인 유혹 / 덜 치명적인 유혹

블루 하이웨이 2015. 9. 22. 02:02

 

 

봉만대는 자신의 직업을 떳떳하게 드러내는 국내 유일의 에로 무비 감독이다. 감각적인(?) 에로 비디오를 연출하던 그는 에로 비디오가 퇴색할 무렵 자신의 활동 무대를 안방에서 극장으로 옮겼다. 하지만 안방과 극장은 달랐다. 사람들은 에로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지 않았다. 극장에서는 보여 줄 수 있는 것도 볼 수 있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한 때 전공을 벗어나 공포물(신데렐라, 2006)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그를 따라다니는 것은 에로 거장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오직 그 만이 들을 수 있는 호칭이었다. 이에 그는 아예 에로 무비를 만드는 과정을 영화로 만든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2012)아티스트 봉만대’(2013)는 봉만대의 자기 고백적인 작품이다. 에로 산업의 뒷모습을 담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궁금해 여기지 않았다.

 

 

상영작 ‘덫 : 치명적인 유혹’(2009)은 봉만대의 정체성이 혼란스럽던 시기에 연출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비로소 빛을 보았다.

 

시나리오 집필에 쫓기는 작가 정민(유하준)은 강원도 깊은 산골의 허름한 민박집을 찾는다. 어쩌다 발길이 닿은 곳에 들르긴 했지만 돈을 더 주고라도 깔끔한 모텔에 들고 싶다. 그런 정민의 발을 묶어 둔 건 짧은 치마 차림의 여고생 유미(한제인).

 

성적 호기심이 발동한 정민은 유미를 훔쳐보고 그런 그에게 유미는 강한 도발을 한다.

 

줄 때 먹어요

 

묘한 것은 유미의 태도였다. 지난 번 일은 꿈일까? 현실일까? 시시각각 변하는 유미의 태도에 정민은 외딴 산골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눈 덮인 외딴 산골을 찾은 작가는 아비인 듯한 늙은 남자와 함께 사는 미모의 여고생을 보고 급격하게 관심을 가진다. 여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무리의 사냥꾼들이 민박집에 나타난다.

 

‘덫 : 치명적인 유혹의 전개는 낯설지 않다. ‘아비인 듯한 남자는 기시감을 주며 민박집을 주막으로 바꾸면 어린 시절 숱하게 보아왔던 전설의 고향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다.

 

쓰는 이는 지난 주말 저녁을 이용해 강원도 인제에 갔었는데 가로등은커녕 오가는 차량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 깊은 산길을 달리며 옛날이라면 이쯤에 주막 한 채 있을 만 하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미모의 주모에 홀려 노잣돈을 잃고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과객의 이야기.

 

문제는 이 영화의 경우, 작가의 상상력이 전설의 고향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긴장감을 고조시킬 책임이 있는 사냥꾼들은 안타까울 정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정사신은 에로 비디오처럼 사실적이지만 예술적이지 않다. 다만 600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되었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고생 역의 한제인은 청순함과 요염함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며 관객들을 유혹한다. 6년간의 긴 어둠을 뚫고 나온 건 영화가 아니라 바로 이 여배우다.

 

 

2015.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