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트 빌로우 / 사람의 이야기보다 감동적인 개들의 모험담
지질학자인 데이비스(브루스 그린우드)는 수성에서 떨어진 운석을 채집하기 위해 미국의 남극기지를 찾아옵니다.
남극에서 운석 찾기? 가능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는 남극 탐험 가이드 제리(폴 워커)와 여덞 마리 썰매개의 도움을 받아 운석 채집에 나서죠.
개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 상쾌도 했겠지만 그 기분이 공포감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크레바스에 빠지고 절벽에서 실족한 데이비스는 그 때마다 썰매개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때맞춰 강추위와 눈보라가 몰아치고 본부에서는 전 대원들에게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리죠.
다리 부상을 당한 데이비스를 겨우 베이스 캠프까지 옮긴 제리. 그는 경비행기 조종사 케이티(문 블러드굿)에게 개들도 함께 데리고 가야한다고 말하지만 자리가 없어 태우지 못하고 맙니다.
케이티는 우선 사람부터 나른 후에 개들을 데리러 오자고 말하고 제리는 꼭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개들에게 남긴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기지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깨어난 제리는 개들을 데려오려고 하지만 본부에서는 운항 허가를 내리지 않습니다. 곧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목줄도 풀어놓지 않은 개들 생각에 제리는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비행기로 세 시간 거리의 베이스 캠프에 돌아갈 방도가 없습니다.
본국에 돌아온 제리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남극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닙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행기가 뜨지 않으니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죠.
그렇게 해서 거의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나고 제리는 뉴질랜드에서 배를 빌려서라도 남극에 들어가려 합니다.
한편 베이스 캠프에 남겨진 개들은 어찌 되었을까요?
썰매개들의 생존 능력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놀라웠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올드 잭'을 제외한 일곱 마리의 개들이 목줄을 끊거나 목걸이에서 목을 빼서 야생 생활을 합니다.
바다새를 잡기도 하고 바다표범을 물리치고 죽은 고래 고기를 뜯어 먹으며 생존합니다.
이 영화를 보다 감동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주요한 개들의 이름과 특징을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고령이어서 목줄을 폴지 못한 올드 잭은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개들의 우두머리인 마야가 다가오자 빼는 듯한 장면이 있는데 대화는 없지만 '괜찮아, 나는 어차피 죽을 거야'라고 말하는 듯하죠.
바다표범과 싸우다 다리를 다쳐 사냥을 할 수 없어진 마야에게 맥스가 바다새를 물어다 주자 다시 맥스에게 건네주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이후 맥스는 개들의 우두머리가 되죠.
어쨌든 목줄을 폴지 못하고 죽은 올드 잭과 오로라를 보고 춤을 추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듀이를 제외한 여섯 마리의 개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무려 6개월 간이나 남극의 겨울을 버텨냅니다.
영화를 보고 알았는데 썰매개들은 눈 속에 몸을 파묻고 잠을 자더군요.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처치에 도착한 제리는 배를 빌려보려 하지만 아무도 남극에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이 때 조종사 케이티와 데이비스 그리고 남극기지의 동료이던 쿠퍼가 짠하고 나타납니다. 물론 영화적 설정이겠지만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죠.
그들은 일단 헬기를 빌려 쇄빙선에 오릅니다. 쇄빙선이 얼음을 깨고 남극 근처에 이르면 거기서부터 다시 헬기를 타고 베이스 캠프로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운 거죠.
하지만 쇄빙선도 두께 2미터가 넘는 얼음바다에 갇히고 제리 일행은 가까운 이탈리아 기지까지 날아가서 스노우 모빌을 타고 가기로 합니다.
사실 제리 일행도 개들이 생존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라도 가보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한 거죠.
무려 육 개월 동안이나 남극의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낸 여섯 마리의 개들과 인간의 해후는 감동적입니다.
영화 '에이트 빌로우'(Eight Below, 프랭크 마샬 감독, 2006)는 오래 전 일본의 남극기지에서 있었던 일에서 영감을 얻어(Inspired by) 만들어진 영화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실화를 토대로 이미 1983년에 영화화했다고 합니다.(남극이야기)
'에이트 빌로우'는 사람의 이야기보다 감동적인 개들의 모험담입니다. 사람에게 지구의 꼭지점과 밑바닥까지 가려하는 욕심이 있다면 개들에게는 생존 본능이 있을 뿐입니다.
참고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93년 이후로 남극에서는 더 이상 썰매개들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홍역이 바다표범에게 전염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하죠.
영화의 주인공 폴 워커는 지난 2013년 11월, 홍수 피해를 입은 필리핀을 돕기 위한 자선행사에 가다 그만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죠. 이 글을 통해 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