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사의 사랑 / 사랑을 박제하다
집 밖으로 나서면 CCTV가 마치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면 상대방에 의해 언제든 녹취가 될 수 있고 문자는 통신회사의 거대한 서버에 보존된다. 이런 세상에서 남모르게 저지르는 범죄는 불가능할 것 같지만, 어제도 오늘도 범죄가 끊이지 않으며 몰라서 그렇지 완전범죄도 여전할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소설이란 거울 같은 것이라 이런 세상에서도 범죄소설을 써야 하며 추리소설도 지어야 한다. 작가도 독자도 정말 머리 아픈 일이다.
최근 출간된 소설, 이순원의 ‘박제사의 사랑’(시공사)은 서정적 추리소설을 표방한다. 추리소설이되 서정적이라는 말이다.
박제사 박인수는 자살한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뒷정리를 하다가 아내의 통장에 입금된 1천만 원을 발견한다. 온라인 송금이라면 누가 송금했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겠지만 죽은 아내 본인이 직접 입금했기 때문에 돈의 출처를 알 수 없다.
이어 박인수는 아내에게 온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전화와 문자를 받는다. 전화는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문자는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만이 내용을 알 수 있는 메시지라 박인수로서는 누가 어떤 의미로 보낸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소설은 박인수가 의뢰를 받아 경주마를 박제하는 과정과 아내가 자살한 이유를 파헤치는 두 가지 이야기를 축으로 전개된다.
전혀 다른 이야기 같아도 두 이야기는 한 지점에서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된다. 박제는 죽은 동물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복원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는 일은 아내의 삶을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소설가 이순원은 데뷔 이후 삼십여 년 동안 ‘은비령’, ‘삿포로의 여인’ 등 서정성 넘치는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지난 1992년 발표한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이하 압구정동)는 천민자본주의 세태를 고발한 소설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예외적인 작품이다. ‘박제사의 사랑’을 펴내며 ‘압구정동’이 발간된 시절에 대해 작가는 추리소설을 추리소설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그저 ‘추리 기법의 소설’이라 부르던 시대였다고 말한다.
‘박제사의 사랑’은 ‘압구정동’으로부터 정확히 30년이 지나 작가가 당당히 발표한 추리소설이지만 서정적이라는 머리말을 달고 있다. 한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려 언급하자면 죽음을 다루지만, 피비린내를 풍기지 않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범인을 찾는 과정인 보통의 추리소설과 달리 ‘박제사의 사랑’은 아내의 삶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서정성이 개입할 공간을 만들었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CCTV를 의식할 필요 없는 이순원 표 추리소설인 셈이다.
지난 주말 소설을 읽는 내내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빈 가을이었다. 그 하늘로 새로운 새들이 올 것이다.」라는 소설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 나서 커피를 내리고 Guns & Roses의 ‘November Rain’을 들었다. 강렬한 드럼 비트가 귀를 울리고 따가운 기타 리프가 가슴을 찌르지만 액슬 로즈의 보컬은 가을 하늘의 눈물을 담아냈다.
November Rain : https://youtu.be/4_fvXrgAm1A
202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