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불편한 소설들

블루 하이웨이 2022. 12. 8. 16:43

근래에 발간되어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은 소설들의 공통점은 □□백화점, ◊◊편의점, ○○서점, △△사진관처럼 업종이나 상호가 제목에 들어간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점빵소설’로 부른다는 이 소설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집이나 건물로 표지 디자인을 꾸몄다는 점이다. 공통적으로 상점을 제목으로 사용하다 보니 비슷한 콘셉트의 디자인이 나온 듯하지만, 번번이 그러하다면 따라하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유사한 제목과 디자인을 가진 책들은 주로 국내 경장편 소설들 그리고 일본 소설들이다. 2012년 12월, 국내에서 간행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이래 우리나라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20.7월), ‘불편한 편의점’(21.4) 등이 잇따라 히트하면서 국내 출판계에서는 하나의 트렌드처럼 굳어졌다.

 

독자들을 현혹하는 유사 제목과 거의 베끼다시피한 판에 박은 디자인으로 책을 팔아보려는 출판사의 꼼수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더욱 불편한 사실은 이러한 트렌드의 책 제목이 일본 출판계의 앞선 시도라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2009년 1월 출간된 오가와 이토의 ‘달팽이 식당’은 국내에서는 2010년 2월 간행되었다. 같은 작가의 ‘츠바키 문구점’은 일본에서는 2016년 4월에 출간되었으며 국내에서는 2017년 9월에 발간되었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에 쓰인 제목들이 일본 소설책의 영향을 받았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카피라이터 출신의 일본의 경영 기획가 가와카미 데쓰야의 ‘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22.8)는 제목과 표지 디자인의 변신에 힘입어 국내에서 ‘점빵소설’로 재탄생한 케이스다.

 

일본에서는 2020년 12월 발매된 이 소설의 원제목은 ‘일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 아마가사키의 작은 서점에서 배웠다(仕事で大切なことはすべて尼崎の小さな本屋で学んだ)’로 수입되면서 ‘점빵소설’로 둔갑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책 따라하기가 안된다고만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출판계 풍토는 왠지 씁쓸하다. 언뜻 봐서는 제목이나 표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책들을 앞다퉈 찍어 내고도 출판사 간에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202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