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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 #2 /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블루 하이웨이 2025. 1. 19. 21:30

 

 

어느 기자에게 들은 이야기다. 언론은 사실을 말할 뿐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법정은 어떨까? 재판을 통해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의 어느 작은 카운티에서 잡지사 기자로 일하는 저스틴 캠프(니콜라스 홀트)는 한 살인사건의 배심원으로 선정된다. 아내의 출산을 앞둔 저스틴은 배심원을 맡지 않으려 했지만, 판사는 배심원 거부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클럽에서 연인 사이로 보이는 남녀가 심하게 다투다가 클럽을 나선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밤에 여자는 그냥 걸어가려 하고 차에 탄 남자는 여자를 뒤쫓는다. 다음날 여자는 다리 아래의 계곡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검찰은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죽은 여자의 남자친구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기소한다.

 

 

검찰과 변호인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당초 배심원들의 의견은 유죄라는 쪽이 우세했다. 하지만 저스틴과 다른 배심원 해롤드(J.K 시몬즈)는 남자가 무죄일 것으로 판단한다. 경찰 출신인 해롤드는 검찰이 사건을 잘 못 짚었다며 뺑소니 사고라고 확신한다. 그는 사건 발생 이후 카센터에서 수리받은 차량을 조회하고 범인은 헤드라이트나 범퍼 등을 수리한 사람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담당 판사는 그런 해롤드를 해촉한다. 배심원은 스스로 사건을 조사할 수 없다는 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둔기로 머리를 맞고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는 검시관의 조사 보고만 믿고 차량 사고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페이스 (토니 콜렛) 검사는 해롤드의 의심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수리 차량들을 추적한다.

 

 

저스틴이 죽은 여자의 남자친구가 무죄라고 생각하는 건 그의 양심과 관련이 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 자신의 차를 몰고 현장을 지나던 저스틴은 무엇인가를 받고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슴 출몰 지역이었기에 사슴을 치었다고 생각하고 사고를 잊었던 저스틴은 재판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그날 받은 것이 사슴이 아니라 죽은 여자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롤드가 뻉소니 사고임을 주장한 후 배심원들의 의견이 무죄와 유죄로 팽팽하게 갈리면서 저스틴은 갈등한다. 과연 저스틴은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배심원 #2’(Juror #2)는 1930년생으로서 곧 아흔다섯 살이 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40번째 연출작으로 ‘용서받지 못한 자’, ‘아버지의 깃발’,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등의 작품을 잇는 사실의 이면을 들춰본 노거장의 법정 드라마다.

 

배심원과 증인들은 각자 자신이 보고 판단하는 것이 사실일 거라 믿지만, 확실한 것은 그날 밤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법정에서 진실을 밝힐 수도 있지만, 백 년 인생을 살아온 노거장은 사법 시스템의 불완전성에 대한 고발을 통해 진실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의 너머에 가려져 있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검사와 변호인이 법정에서 펼치는 주장을 교차로 보여주며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어쩌면 노거장의 마지막 연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배심원 #2’는 평단의 호평 일색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서조차 겨우 50개의 극장에만 걸렸다가 VOD 시장으로 빠지고 말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오랜 파트너인 워너 브라더스사의 CEO 데이비드 자슬라브가 그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거장의 영화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홀대가 심했다.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2016) 이래 국내 극장에서 상영된 그의 작품은 ‘라스트 미션’(2019) 단 한 편뿐이다. 구순의 감독은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이후에 무려 다섯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과 주연 배우 니콜라스 홀트

 

당신이 90대에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지 생각한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블루 하이웨이 생각 -

 

2025.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