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비수사 / 재료의 식감에 못 미치는 조리
영화 ‘극비수사’(곽경택 감독)의 바탕 사건이 되었던 1978년 부산 정효주양 유괴사건은 7개월 사이에 같은 아이가 두 번씩이나 납치되었다는 것과 일반 형사사건으로서는 드물게 대통령이 직접 구명을 호소했다는 것 때문에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죠.
게다가 말입니다. 알고 봤더니 범인 검거와 아동 구출에 어느 도사의 예언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영화적 소재로서 거의 완벽하지 않습니까?
1978년 7월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은주가 괴한에게 납치를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은주가 낯선 사람의 세단을 타고 사라졌다는 목격자들의 진술만 있을 뿐 범인은 사건이 발생하고도 한동안 은주의 집에 전화 한통 넣지 않았다. 애가 탄 부모는 용하다는 무속인들을 찾아다니며 아이의 생사를 물었지만 부정적인 답변만 돌아온다.
그러나 도사 김중산(유해진)만은 아이가 살아있다며 십오일 째 되는 날 범인으로부터 연락이 올 것이며 삼십삼일 째에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예언한다.
한편 사건을 담당한 경찰이 그런 김중산을 용의선상에 올린 가운데 전담팀에 합류한 공길용 형사(김윤식)는 아이 구출보다 범인 검거에 혈안이 된 수사팀에 맞서 극비수사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어차피 이 영화는 결말이 알려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영화의 초점은 아이를 무사히 찾아내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관객의 입맛을 돋우는 소재들을 어떻게 버무려서 식탁을 차리느냐가 되겠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소재는 완벽합니다. 식욕을 자극하죠. 그러나 감독은 식재료를 과신한 탓인지 관객의 시장기 조절에는 소홀한 듯합니다. 영화는 거의 종반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범인을 도사와 형사가 각자의 방법으로 쫓는 과정을 그리는데 동일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관객들이 중반 이후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까닭입니다.
범인이 검거된 이후에 전개되는 상황을 받치려 감독은 본 사건 외에 스승과 제자라는 도사 간의 갈등과 경찰 내부의 알력을 밑반찬처럼 내놓기는 합니다. 그런데 제 입맛에는 밑반찬이 메인 메뉴의 식감을 지운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부조화(不調和)죠.
영화는 형사 역을 맡은 김윤식과 도사 역의 유해진 투톱 체제입니다만 왠지 김윤식은 주연, 유해진은 조연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이건 단지 두 사람의 오랜 배역으로 인해 생기는 선입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도사 역할을 맡은 유해진의 비중이 김윤식보다 적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극비수사’는 곽경택이라는 이름값과 독특한 소재를 감안하면 상당히 아쉬운 뒷맛이 남는 작품입니다. 다만 영화의 바탕이 된 실화의 힘이 세기 때문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즐겨 보는 관객들이라면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