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 ‘렛잇비’만으로는..
영어로 여행을 뜻하는 ‘Travel'의 어원은 고행을 뜻하는 ’Travail'이라고 한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나 유효한가 보다.
영화 ‘와일드’(Wild, 장 마크 말레 감독)는 이 개고생을 사서하기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무려 4,285Km의 미 대륙을 종단한 한 겁없는 여성의 고행기다.
셰릴 스트레이드, 26세. 어려서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으며 어머니의 죽음과 이혼 등으로 인생이 무너져 내린 여성이다.
‘스트레이드’(Strayed)라는 성은 이혼 후 집 나왔다는 뜻에서 스스로 붙인 것이다.
마약과 무분별한 섹스, 이혼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생이 바닥을 친 셰릴(리즈 위더스푼)은 우연히 눈에 띈 등산 안내책자를 보고 PCT(Pacific Crest Trail) 종단을 결행한다.
미멕 국경지대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 오래곤, 워싱턴 주를 관통하며 일곱 개의 국립공원과 사막지대, 눈 덮인 고산지대를 거쳐 캐나다에 이르는 장장 4,285Km의 트래킹 코스인 PCT는 완주하는데 평균 150여 일이 소요되며 성공하는 사람의 수가 연간 120여 명에 불과한 악마의 코스.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나갈 것 같은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며 그녀가 마주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극한의 육체적 고통이 몰려오고 외로움과 두려움이 엄습하는 가운데 셰릴의 의식은 과거의 상처들을 불러낸다.
셰릴의 고행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씻기 위한 의식이며 자연치유 같은 것이었으리라.
몸이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며 대장정의 끝에 선 셰릴은 ‘있는 그대로의 삶이야말로 바로 야생’(How wild it was, to let it be)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 삶은 PCT 종단을 통해 자연에서 얻기도 했지만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 온 그녀 자신의 과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털어낸 후에 비로소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영화는 셰릴의 긴 여정을 따라가지만 94일 간의 고행을 두 시간에 펼치기란 벅차다. 불가피한 건너뛰기는 관객에게 전해지는 셰릴의 고통마저 건너뛰게 한다. 셰릴은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지만 정작 관객은 고개를 갸웃하는 이유다.
일정한 스토리 라인이 없이 그저 셰릴의 발걸음을 쫓는 카메라의 시선은 자연 다큐처럼 건조하다. 건조한 시선은 인간에게 아무 것도 내어주지 않으려 하는 이기적인 자연을 담아냈지만 풍광의 아름다움은 외면했다.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