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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 쇼를 위한 인생은 없다
197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프로 레슬링은 국민들로부터 요즘의 K-1이나 프라이드를 능가하는 폭발적인 관심을 얻은 인기 스포츠였습니다.
당시 김일 선수가 출전하는 경기는 최홍만의 K-1보다 훨씬 많은 관심과 인기를 얻었죠.
하지만 70년대 후반 들어 프로 복싱에서 잇달아 세계 챔피언을 배출하고 80년대 들어서는 프로 야구와 프로 축구가 출범하면서 프로 레슬링은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됐죠.
프로 레슬링의 퇴조 원인으로 바로 '프로 레슬링이 쇼'이기 때문임을 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프로 레슬링이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도 프로 레슬링이 쇼라는 인식은 파급되어 있었죠.
'랜디'(미키 루크)는 8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얻은 프로 레슬러였지만 지금은 일정한 직업도 모아 둔 재산도 없이 홀로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비참한 신세입니다. 그나마 랜트비를 제 때에 내지 못해 때로는 자신의 차 안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죠.
주위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푼돈이나 벌기 위해 아직도 이따금 링에 오르는 랜디는 어느 날 경기를 마친 뒤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갑니다. 의사는 심장이상이라며 당장 레슬링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권고하죠. 하지만 랜디는 자신은 '프로 레슬러'라고 대답하고 병원을 나섭니다.
고독한 랜디의 유일한 말벗은 단골 바의 스트리퍼 '캐시디'(마리사 토메이) 뿐입니다. 캐시디는 외로울 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가족뿐이라며 유일한 혈육인 딸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를 만나 볼 것을 권유하죠.
캐시디의 말을 듣고 랜디는 스테파니를 찾아 가지만 아버지를 대하는 그녀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랜디는 다정하게 대하는 캐시디에게 마음을 열지만 아홉 살 난 아이를 키우는 나이 많은 스트리퍼 캐시디는 랜디와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일이라고 여깁니다.
한편 랜디의 프로모터는 랜디의 전성기 시절 경기를 재현해서 돈을 벌여보려 하지만 랜디는 은퇴를 선언하고 새 삶을 살고자 합니다. 하지만 은퇴 레슬러에게 돌아오는 것은 멸시와 냉대 뿐이죠.
결국 자신이 돌아갈 곳은 링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랜디는 캐시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경기를 강행하는데..
80년대의 섹시 가이 미키 루크가 출연해서 더욱 화제가 된 '더 레슬러'(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Music & Lyrics)이나 우리 영화 '라디오 스타'처럼 8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레슬링의 추억'을 넘어 링의 처절함과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스크린에 녹여 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프로 레슬링은 정말 '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는 링에 오르기 전 상대방과 시나리오를 짜고 관객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몰래 면도칼로 자신의 이마를 긋는 랜디의 모습을 잡아주죠.
하지만 프로 레슬링이 비록 정해진 각본에 의해 연출되는 쇼라고 하더라도 링에 오르는 랜디의 인생 자체를 과연 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극중에서 캐시디가 프로 레슬링은 쇼가 아니냐고 묻자, 랜디는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난 깊은 상처들을 보여줍니다. 링 위에서 그가 흘린 피와 땀은 진짜였던 것입니다.
영화의 주제가(The Wrestler)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불렀습니다. 짧은 가사에 늙은 레슬러의 인생을 영화보다 리얼하게 함축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언제나 난 홀로 남겨졌지
바닥에 쓰러지고 피흘리는 나를 보고 환호하는데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소?
영화 속에는 'Quiet Riot', 'Cinderella', 'Scorpions', 'Guns N Roses' 처럼 '그 때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메탈밴드의 곡들이 줄줄이 흐릅니다. 랜디는 그 시절의 노래들이 좋았다며 '커트 코베인'이 다 망쳐 놓았다고 푸념하죠. 주)
미키 루크는 이 작품으로 올해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권투선수로 활동한 후유증으로 수 차례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하는데 왕년의 섹시 가이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더군요.
여흥거리가 부족하던 '그 때 그 시절' 피흘리고 쓰러지면서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우리의 레슬러들을 되돌아 봅니다.
주)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은 90년대에 활동했던 얼터너티브 록그룹 너바나(nirvana)의 리더. 8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팝메탈은 얼터너티브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 위력을 잃었다. 랜디는 프로 레슬링의 황금기와 퇴조를 팝메탈의 부침과 결부해 그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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