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26. 9. 23. 23:25

가능한 사랑 / 도둑맞은 해고 노동자의 삶

 

예지(조여정)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연출가다. 어느 해고노동자의 장례식장에서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을 만난 예지는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해고로 인한 충격으로 세상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호석과 그런 호석의 일상을 낱낱이 포착하는 예지. 영화를 촬영하면서 조금씩 호석이 마음의 문을 열자, 예지는 호석과 미옥을 사모펀드 운용자인 남편 상우의 별장으로 초대한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두 부부는 함께 떠난 여행에서 예기치 못한 균열을 일으킨다.

 

 

제83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가능한 사랑’은 이창동 감독이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영화다.

 

미옥은 대부호 상우(조인성)를 남편으로 두고 있지만, 일절 남편의 도움 없이 정부의 소규모 제작 지원을 받아 독립영화를 만든다. 어느 날 해고노동자들의 사무실을 촬영하는 예지에게 미옥이 묻는다. 지금 입고 있는 셔츠가 얼마짜리냐고.

 

해고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영화를 만들지만, 예지는 그들의 현실을 얼마나 이해하는 걸까. 조리개를 아무리 활짝 연들 예지가 자신의 카메라에 그들의 아픔을 모두 담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예지의 호의에 닫았던 마음의 문을 살짝 열었던 호석과 미옥 부부는 상우의 별장에서 차원이 다른 그들의 세계를 경험하고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온다.

 

 

‘가능한 사랑’은 쉽게 읽힌다. 도식적이다. 이창동 감독은 물과 기름처럼 어울릴 수 없는 해고노동자 부부와 대규모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부부를 비교한다.

 

어쩌면 예지와 상우 부부의 집은 강남 어디일지도 모르겠다. 강남 줌마 예지가 정부 예산을 얻어 해고노동자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건 이창동 감독이 ‘가능한 사랑’을 만든 과정과 닮았다.

 

당초 ‘가능한 사랑’은 한국영화 제작 지원 사업 당선작이었으나 거장이 신인 연출가들의 기회를 빼앗은 거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에 이 감독이 자진 취하했다고 알려진다. 이점을 의식한 이창동 감독은 영화 속에서 대부호 남편을 둔 예지가 코딱지만 한 정부 예산 지원을 받아 영화를 찍는 걸 못마땅해하는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산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이 감독에게 손을 내민 건 거대자본인 넷플릭스였다. 이 작품이 소규모 스크린에 단시일 동안 걸린 뒤 넷플릭스를 통해 송출되는 이유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자본에 희생된 노동자들에 관한 영화를 대자본의 도움을 받아 만들다니.

 

해고노동자의 아픈 목소리를 채집하는 예지의 두 발은 언제나 자본을 굳게 딛고 서 있다. 그런 예지의 모습은 명절을 맞아 전통시장에서 코스프레 떠는 정치인의 서민 체험처럼 헛헛하다. 일찍이 박완서가 ‘도둑맞은 가난’에서 가난을 경험으로 소비하는 부자의 모습을 꼬집었듯, 이창동 감독은 '가능한 사랑'을 통해 누구에게는 목숨을 잃은 것과 같은 해고도 자본에게는 소비의 한 대상일 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너무 시니컬하다고?

 

홍세화 선생은 생전에 진보를 말하는 것과 진보로 사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수십억 원대 강남 아파트에 살면서 진보를 말할 수는 있어도 진보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PS : 상우가 어려서 불고 놀던 호루라기가 없어지자, 예지가 미옥 가족을 의심하는 장면은 사족으로 보인다.

 

2026.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