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관문 : 욕망의 꽃 / 배우는 배우다

 

 

젊고 매력적인 여자가 늙은 남자에게 접근을 하면 뭐든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내와 하나 뿐인 자식을 잃고 홀로 사는 전직 교장 선생님 종섭(신성일)은 간병인 겸 가사도우미로 젊고 매력적인 연화(배슬기)를 들인다.

 

그런데 말기 대장암 환자인 종섭의 성깔이 만만치 않다.

 

'대소변을 받아야 할지도 몰라. 중간에 그만두면 계약금은 없다는 거 들었지? 하루에 두번 목욕을 시켜줘야 해. 귀찮다고 대충 수건으로 닦으면 안되고.'

 

 

연화는 지성을 다해 그런 종섭의 병수발을 든다. 그리고 근력에 좋다는 야관문을 달여 먹인다.

 

어느 날 종섭의 목욕을 도와주던 연화는 종섭의 남성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낀다. 

 

야관문을 장복해서 일까? 종섭은 병원에서 암세포의 증식이 정지되었다는 놀라운 진단을 받는다.

 

'연화야, 싱싱한 활어가 먹고 싶구나. 우리 회 한 사라 하러 할까?'

 

암세포 증식이 정지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종섭은 손녀 같은 연화와 활어를 안주로 주거니 받거니 소주잔을 기울인다.

 

오랜 만에 마음 놓고 취한 종섭은 그날 밤 연화를 덮치려 하지만 연화의 거부로 실패한다.

 

'약주가 과해서 실수하신 걸로 알께요. 다 제 잘못이에요.'

 

그러나 연화를 향한 종섭의 욕망은 이후로도 그치지 않았다. 그날 밤의 일은 시작일 뿐이었다.

 

옷이든 구두든 종섭은 연화를 위해 뭐든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종섭이 다가올수록 뒤로 물러서는 연화.

 

'연화야, 육향이 그리워서 그런다. 늙은이의 욕심이라 여기지 말고 날 좀 도와다오.'

 

자신의 목욕을 도와주는 핫팬츠 차림의 연화를 자꾸만 흘끔거리던 종섭은 연화의 손을 자신의 아랫도리로 가져간다.

 

더 이상 종섭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연화.

 

 

장면이 바뀌어 종섭은 젊은 자신을 꿈군다. 상대는 그대로 연화다.

 

이번엔 카메라가 격렬한 관계를 갖고 있는 연화의 뒷모습을 잡아준다. 그런데 연화와 관계하는 젊은 남자는 종섭이 아니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나란히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중 종섭은 연화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연화야, 살고 싶구나, 널 갖고 싶구나.'

 

'할아버지.'

 

'할아버지? 허허, 할아버지라니.. 예끼, 고얀 녀석.'

 

종섭 앞에서 정색을 하는 연화.

 

'할아버지, 제가 누군지 정말 모르시겠어요?'

 

', 니가 그럼?'

 

 

일흔이 넘어 평생 듣지 못했을 욕이란 욕은 죄다 듣고 있는 원로 배우 신성일씨(75)씨가 손녀뻘 되는 배슬기(27)와 함께 출연한 '야관문 : 욕망의 꽃'(이하 야관문, 감독 임경수, 2013)은 영화 자체보다 오십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남녀 주연배우가 '하느냐 마느냐'로 더욱 화제가 된 작품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없다. 위에 쓴 내용은 쓰는 이가 영화를 보고 나서 윤색한 것이니 낚이지 마시길.. 뼈대만 가지고 왔지 영화와 많이 다르니 절대 오해 마시라..

 

하지만 쓰는 이는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두 사람의 관계 장면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본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다.

 

젊고 매력적인 여자가 늙은 남자에게 접근을 한다면 뭐든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연화는 실은 종섭이 교제를 반대했던 죽은 아들의 여자였다. 아들이 룸살롱에 나가는 여자를 사귄다는 걸 안 종섭은 그냥 겁만 주고 아들을 연화로부터 떨어트려 놓으려 했는데 그만 아들은 그 충격으로 죽게 되고 연화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다.

 

이후 독거노인인 종섭은 대장암 판정을 받고 연화를 간병인으로 집에 들인다.

 

그런데 팬심과는 달리 '야관문'에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 같은 종섭과 연화가 관계하는 장면은 없다. 그게 팬들을 골나게 한 거 같은데 그래서 쓰는 이가 새롭게 윤색을 했으니 상상하면서 즐감하시라. ㅋㅋ

 

 

농담이고..

 

쓰는 이가 종섭과 연화의 관계 장면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종섭과 연화의 순애보 같은 로맨스 만으로는 연화가 종섭의 집에까지 들어와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 했는지 그리고 말기암 환자인 종섭의 자살 이유가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아들이 사랑했던 여자와 관계한 죄책감 그리고 종섭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주기 위해 연화가 종섭의 집에 들어온 것으로 설정했더라면 비록 통속적이라는 비평을 들었을지라도 영화적 완성도를 높였을 것이다.

 

영화는 종섭과 연화의 관계 대신에 연화를 의심하는 오기자(유태웅)와 연화의 그 장면을 집어 넣었다. 아마 상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필요하지 않은 설정이다.

 

 

종섭과 연화의 감정의 흐름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연기의 문제라기보다 연출의 문제다.

 

배슬기의 연기는 생각 보다 안정적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팜므파탈을 드러내며 종섭을 심하게 압박하면서 죽음에 이르게 해야 하는데 그게 안나왔다. 역시 연출의 문제다.

 

원로배우 신성일씨는 영화 외적인 이유로 욕을 많이 먹는데 영화는 영화로 배우는 배우로 봐주자. 우리는 언제나 원로배우를 존경하는 풍토가 자리 잡을까? 그 전에 배우가 존경 받을 일을 해야 한다고? 배우는 배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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