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홍상수전 2015. 8. 17. 11:00

강원도의 힘 / 금붕어가 대야에 빠진 날

 

 

대학생 지숙(오윤홍)은 친구들과 함께 강릉행 열차에 오른다.

 

강릉에 도착한 지숙은 친절한 경찰관(김유석) 아저씨의 도움으로 민박집을 잡는다.

 

여행의 저녁.

 

세 명의 여대생과 한 경찰관 아저씨는 밤이 깊도록 술을 마신다.

 

두 명의 친구가 먼저 자리를 뜨고 만취한 지숙은 경찰관의 도움을 받는다.

 

함께 하룻밤을 보내긴 했지만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와 경찰관과 연락을 주고 받던 지숙은 이번에는 홀로 강릉을 찾는다.

 

역시 늦도록 술을 마시고 함께 여관에 든 지숙과 경찰관. 이번에도 지숙의 거부로 '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서울행 버스에 올라 탄 지숙은 몹시 슬프게 운다.

 

 

 

 

대학교수 임용을 앞두고 있는 상권(백종학)은 먼저 임용된 후배와 함께 강원도로 떠난다.

 

남자 둘이서?

 

1차에 이어 2차와 3차로 이어진 술자리. 여자들을 데리고 콘도에 돌아 온 두 남자는 그래야 하는 것처럼 허무한 관계를 가진다.

 

서울로 돌아온 상권은 임용된 학교의 교수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지숙을 불러낸다.

 

아이를 지웠다며 관계만은 끝까지 거부하는 지숙.

 

'오빠 아이 아니니까 걱정은 하지 마세요.'

 

 

 

 

'강원도의 힘'(1998)은 홍상수 특유의 대구 형식이 처음으로 나타난 작품이다.

 

불륜 관계인 상권과 지숙은 각각 강원도로 여행을 떠난다. 같은 시간에 같은 열차를 탔건만 둘은 마주치지 못한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지금 이 시간 같은 공간을 여행하고 있지만 만나지는 못한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고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강원도의 힘'에서 느껴지는 건 일상의 고독이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던 지숙은 누군가를 통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지운다. 그러고는 친구들과 강원도행 여행에 오르는데 그곳에서 다시 유부남 경찰관과 만난다. 만남과 떠남이 두려운 지숙은 경찰관과 거리를 둔다.

 

설악산에 오르던 지숙은 길에 떨어진 금붕어를 발견하고 산에 묻는다. ? 그 것이 밟혀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교수로 임용되기 전에 나가던 사무실에서 상권은 누군가 두고 간 금붕어를 플라스틱 대야에 키운다. 아무 것도 없는 대야 속에 고립된 금붕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금붕어는 상권과 지숙을 이어주는 통로다. 나중에 상권은 대야 속의 금붕어 가운데 한 마리가 없어졌다는 걸 깨닫는데 혹시 없어진 금붕어는 지숙이 묻은 그 금붕어가 아닐까?

 

경찰관과 술을 마시던 지숙은 그로부터 한 여자가 산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그 여자는 상권이 산에서 우연히 만났던 여자다. 이 처럼 상권과 지숙은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묘한 인연으로 엮여 있다.

 

그런데 우리네 인생이 알고 보면 다 그러하지 아니한가?

 

 

 

 

'강원도의 힘'은 홍상수의 필모그래피에서 커브를 그리는 작품이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극사실주의를 보여준 홍상수는 '강원도의 힘'에서 처음으로 대구의 형식을 취했다. 이후 홍상수는 사람과 사람, 사건과 사건,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의 대구를 통해 같은 듯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또한 '강원도의 힘'은 전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이어 홍상수식 사실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유명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 투박하게 보여지는 배우들의 연기는 그 자체로 사실주의를 추구한다. 그것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홍상수의 힘'이기도 하다.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