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홍상수전 2015. 9. 11. 12:00

생활의 발견 / 현실의 발견

 

대학로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연극배우 경수(김상경)은 충무로로 진출한다.

 

하지만 영화는 흥행에 참패하고 경수는 영화사에서 받은 출연료 1백만원을 가지고 아는 선배가 있는 춘천으로 떠난다.

 

춘천에서 무용학원을 하는 명숙(예지원)을 만난 경수는 함께 술을 마시다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선배를 먼저 보내고 하룻밤을 보낸 경수와 명숙.

 

쿨하게 떠나고픈 경수와 달리 명숙은 경수에게서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고 싶어한다.

 

 

춘천을 떠난 경수는 부산행 열차에 오른다.

 

경수는 옆자리에 앉은 선영(추상미)으로부터 팬이라는 말을 듣는다.

 

세상에 연극배우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니..

 

선영에게 호감을 느낀 경수는 경주에서 내린 그녀의 뒤를 밟는다.

 

결국 선영의 전화번호를 받아낸 경수.

 

다음 날, 낮술을 마시던 경수는 선영으로부터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말을 듣는다.

 

', 경수씨 만난 적 있어요.'

 

'?'

 

 

'생활의 발견'(감독 : 홍상수, 2002)은 제목을 봐서는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려운 영화다. 영문 제목을 봐도 그렇다. On the occasion of remembering The Turning Gate. 대체 무슨 뜻일까?

 

Turning Gate란 회전문(廻轉門)을 의미한다. 빌딩의 현관에 있는 회전문(回轉門)이 아니라 춘천의 청평사에 있는 문이다

 

경수가 선배와 춘천의 청평사에 갔을 때 선배는 회전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 태종의 공주가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상사병에 걸렸다. 당 태종은 남자를 괘씸하게 여겨 죽여버렸다. 죽은 남자는 뱀으로 환생해서 공주의 몸을 칭칭 감았다. 어느 날 한 스님이 나타나 조선에 있는 청평사로 가면 뱀을 떼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청평사에 도착한 공주는 회전문 앞에서 뱀에게 기다리라 이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주를 기다리던 뱀은 공주가 나오질 않자 회전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그만 비가 내리고 벼락이 치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회전문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하면 영화 '생활의 발견'은 술술 풀린다.

 

 

춘천에서 만난 여자 명숙은 경수에게 집착한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긴 했지만 경수에게 있어서 명숙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명숙은 경수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만 하룻밤 함께 하면 꼭 사랑해야 하는 건가?

 

명숙이 지겨워진 경수는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열차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팬 선영을 만난 경수는 조르고 졸라 원했던 바를 이룬다. 그런데 경수는 찰거머리 처럼 붙어 선영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국립대학교 교수 남편을 둔 선영은 경수가 싫진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생활을 내던질 만큼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다른 사람의 집착이 싫었던 경수는 정작 선영에게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당나라 공주처럼 문 안으로 들어가버린 선영을 기다리던 경수는 느닷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선영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뱀이라는 것을.

 

 

'생활의 발견'은 경수가 춘천에서 명숙을 만난 이야기와 경주에서 선영을 만난 이야기가 대구를 이루고 있는 구조다. 하지만 이야기의 무게는 경주에 있다. 춘천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는 경주를 위한 에피타이저 같다는 느낌을 준다.

 

재미있는 건 선영 역시 오랫 동안 경수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영은 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또 사랑하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르다는 것도.

 

 

PS : 영화에 나오는 회전문 설화는 청평사 3층 석탑에 얽힌 설화를 살짝 변형한 것이다. 원나라 순제의 공주에게 상사병이 걸린 뱀이 붙었다. 공주는 청평사로 와서 뱀을 떼어 냈는데 이 사실을 안 순제가 석탑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청평사의 창건 연도는 973년으로 따라서 당 태종의 공주가 청평사에 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