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5. 8. 19. 19:00

우아한 세계 / 조폭 가장이 꿈꾸는 우아한 세계

 

강인구(송강호), 대외적으로는 청과물 도매상이라고 소개하지만 진짜 직업은 조폭의 중간 보스다. 그에게는 부장이나 팀장이라는 직책보다는 형님이라는 호칭이 더욱 잘 어울린다.

 

조폭의 이면은 어떤 모습일까?

 

놀랍게도 조폭의 이면에 조폭은 없다. 병든 어머니와 철없는 남동생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어린 여동생 등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비열한 거리의 주인공 병두처럼 강인구에게도 평범한 가족이 있다. 말하자면 생활형 조폭이다.

 

 

큰 아들을 멀리 캐나다로 유학 보낸 인구는 막내딸마저 보내기 위해 돈을 더 벌어야만 한다. 둘씩이나 유학을 보낼 형편은 안 되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희순(김소은)은 오빠처럼 유학을 보내달라고 조른다.

 

희순의 담임을 만난 자리에서 인구는 룸살롱 상품권을 건넨다. 희순은 그런 아빠를 몹시 경멸한다.

 

그러가하면 아내 미령(박지영)은 남편이 이제 그만 정신 차리기를 바란다. 조직 생활을 접으로라는 말이다.

 

 

누군 하고 싶어서 이 짓거리 하나? 지금까지 어떻게 먹고 입고 살았는데, ‘직장그만두면 생계는 누가 책임지나?

 

다른 대한민국 가장들과 마찬가지로 인구도 피곤하다. 먹고 살기위해 말 안 듣는 놈들 손도 좀 보고 하다보면 저녁엔 졸음이 쏟아진다.

 

조직에서의 자리도 위태롭다. 험한 일은 도맡아 하건만 회장님의 동생 되시는 상무(윤제문)라는 녀석이 일을 가로채려 한다.

 

재주부리는 놈과 돈 세는 놈이 다른 세상의 더러운 이치는 조직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주 어렵게 따낸 재개발 시공권 만해도 그렇다. 상무랍시고 관리권을 자신에게 바치라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인구는 그럴 수 없다. 희순이 유학도 보내야 하고 물 콸콸 나오는 새 집으로 이사도 가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 아내는 직장그만두라고 하고 딸은 아빠를 부끄럽게 여긴다.

 

조직도 직장이고 조폭도 가장이다. ‘, 나도 피곤해, 이제는 싸움도 안 되고 가족만 없다면 나도 때려 치고 싶단 말이야.’

 

 

한재림 감독의 우아한 세계’(2007)는 조폭을 소재로 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조폭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부권의 상실로 대변되는 이 시대에 대한 우화다.

 

강인구, 조폭 생활 이십 년째인 들개파의 중간 보스. 겉으론 험악해 보이고 경찰의 집중 관리 대상인 조폭의 민낯은 놀랍게도평범한 가장의 얼굴이다.

 

조직(직장)에서는 언제 칼 맞을지(잘릴지) 모르고 가정에서는 환영 받지 못한다.

 

드디어 물이 시원하게 나오고 너른 정원을 가진 고급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용케 조직에서도 살아남았을 때 돌연 아내는 딸을 데리고 캐나다로 떠난다.

 

인구에게 남은 건 이제는 너무 넓어 허전한 주택과 당뇨.

 

 

어느 날 그는 가족들이 부쳐온 비디오 테이프(때는 2007년이다)를 보며 혼자 라면을 먹다 드디어 울음을 터뜨린다. 라면 사발을 내던진 그는 곧 쏟아진 라면을 주워 담는다.

 

캐나다에서의 우아한 세계를 즐기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플레이되는 TV와 깨진 라면 그릇과 라면 가락을 주워 담는 인구의 모습이 비춰지는 라스트 씬은 강렬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강인구 역의 송강호는 평범한 가장과 조폭의 얼굴을 자유로이 오간다.

 

 

PS : 폭력의 탄생과 성장을 그린 거리 삼부작’(말죽거리 잔혹사 : 2004, 비열한 거리 : 2006, 강남 1970 : 2014)을 연출한 유하 감독은 언젠가 세 번 째 작품 계획을 묻는 질문에 우아한 세계가 바로 내가 하려던 이야기와 똑 같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씨네 21 인터뷰) 거리 삼부작의 세 번 째 작품이 늦어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5.8.19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