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5. 9. 22. 23:17

츠루기다케, 점의 기록

 

 

메이지 39(1905), 일본 육군의 측량부대에서는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중부의 츠루기다케산에 오르기로 결정하고 측량기사로 일하는 시바사키 요시타로(아사노 타다노부)에게 임무를 부여합니다.

 

산의 정상에 올라 측량에 필요한 삼각점을 설치하라는 것이었죠.

 

그 해 가을, 시바사키는 현지 안내인인 우지 쵸지로와 함께 츠루기다케에 올랐으나 악천후로 인해 등정을 포기하고 상부에 임무 실패를 보고합니다.

 

보고를 받은 육군에서는 그때까지 아무도 오르지 못했다는 츠루기다케산에 먼저 오르기 위해 다시 한번 시바사키를 독려합니다. 마침 일본산악회가 결성되어서 츠루기다케산 등정을 계획했기 때문에 민간인에게 츠루기다케 초등의 영예를 내줄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이죠.

 

시바사키는 다시 우지를 찾아 츠루기다케 등정을 논의하고 이듬 해 봄에 2차 등정을 시도합니다. 옛날에 어느 고승이 짚신 3천 켤레를 쓰고도 오르지 못했다는 츠루기다케. 시바사키와 우지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내기 위해 츠루기다케에 오르려 하지만 산은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일본 중부의 북알프스에 있는 츠루기다케산(2,999m)은 지금은 일반 등산객들도 오르는 곳이지만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처녀산이었습니다.

 

근대적 의미의 등산은 이백년이 조금 넘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등반기술은 물론 등산화 등 기본적인 등반장비조차 갖추지 못하고 산에 오른 사람들이 없었다면 산은 여전히 사람의 땅이 아니라 하늘의 땅이며 신만이 사는 곳이었겠죠. 길이란 누군가 지나간 사람이 있었기에 생긴 것입니다.

 

 

'츠루기다케, 점의 기록'(劒岳, , 감독 기무라 다이사쿠, 2009)20세기 초 측량과 지도 제작을 위해 그 곳에 오르지 않고는 산을 말하지 말라는 험산 츠루기다케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시바사키는 산에서 만난 산악회 사람들에게 당신들에게 산에 오르는 건 놀이가 아니냐고 묻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하는가인 것처럼 그에게는 그저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오르는가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목적이 분명할 때 사람은 목숨도 버릴 수 있는 거죠. 그게 없으면 개죽음일 뿐입니다.

 

시바사키는 세상에서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아는 것은 곧 나를 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도 제작에 대한 그의 열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안내인인 우지와 시바사키가 서로 초등을 양보하는 장면은 뭉클합니다. 우지는 자신의 임무는 오르고자 하는 사람을 도와 츠루기다케에 오르게 하는 거라 하고 시바사키는 지금까지 그랬듯 끝까지 안내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CG에 의존하지 않고 스태프와 배우들이 실제로 등반을 하면서 촬영을 했다는 '츠루기다케, 점의 기록'2010년도 일본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과 촬영상 등 무려 11개 부문을 휩쓸었습니다.

 

카메라에 담긴 츠루기다케의 장엄한 모습은 황홀하리 만큼 아름답습니다. 하나의 계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품고 있는 산은 자연이자 우주입니다.

 

 

2014.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