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5. 9. 26. 09:46

에베레스트 / 저 산은 오지마라 오지마라 하고..

 

 

제이크 질렌할, 제이슨 클락, 샘 워싱턴, 조쉬 브롤린, 키이라 나이틀리, 로빈 라이트. 이만하면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모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동안 케이투(버티칼 리미트, K2), 낭가 파르밧(운명의 산 낭가 파르밧), 노스페이스 등을 소재로 한 산악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만 정작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8,848m)를 소재로 한 산악영화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등정하기가 어렵다는 뜻인가요?

 

 

1953529일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셀파)가 인류 역사상 초등한 이래 그동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오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무산소 등정(숨을 참고 오르는 게 아니라 산소통에 의존하지 않는 등정), 최단시간 등정, 베이스 캠프가 아니라 해수면에서 오르기, 종단(올라온 길의 반대 길로 내려가기) 등 다양한 등정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의족 착용자와 맹인이 등정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등정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가이드 등반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1992년 뉴질랜드의 산악 가이드 롭 홀에 의해 시작된 가이드 등반은 곧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시니컬하게 말하면 돈만 내면 누구나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오를 수 있게 된 거죠. 돈으로 산머리를 밟고 서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산신령이 노하지 않으셨을까요?

 

 

영화 에베레스트’(감독 : 발타자르 코루마쿠르)에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는 사람들은 전문 산악인들이 아닙니다. 물론 전혀 산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더그(존 호킨스)는 평소 목수와 집배원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산에 오릅니다. (조슈 브롤린)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견딜 수가 없다고 합니다. 등반 가이드 사업을 하는 롭(제이슨 클락)과 또 다른 가이드 스캇(제이크 질렌할)을 따라 에베레스트에 모인 사람들은 사연이 제각각이긴 하지만 정상에 오르겠다는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목표 달성을 위해 1인당 65천불이라는 거금을 지불했습니다.

 

등반 경험이 제법 있긴 하겠지만 문제는 이들이 산악인이라기보다는 에베레스트 여행객에 가깝다는 거였죠.

 

롭과 스캇은 이들을 이끌고 과연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 있을까요?

 

 

산에 오르고 정상을 정복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오만한 생각일 뿐입니다. 인간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이 길을 내어주는 것이죠. 또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교감의 상대입니다. 그저 오르는 게 아니라 등반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롭과 스캇을 따라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들의 목표는 단 한 가지, 그저 두 발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다보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무리한 등반을 고집합니다. 전문 산악인인 롭과 스캇은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고 결국 이들은 산의 노기(怒氣)를 부릅니다.

 

 

산악영화는 버티칼 리미트클리프 행어처럼 헐리웃 특유의 기술이 많이 들어간 작품들과 운명의 산 낭가 파르밧이나 노스페이스처럼 인위적인 기교를 쓰지 않고 산 자체를 앞세운 작품들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운명의 산 낭가 파르밧노스페이스는 독일영화로군요.

 

영화 에베레스트는 굳이 분류를 하자면 후자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재미는 떨어진다는 말이죠. 산은 그 자체가 악역입니다. 따라서 특별한 기교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스릴을 줄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안타까울 정도로 긴장감이 들지 않더군요.

 

또한 인물들 간의 갈등이 부족하고 이야기가 단선으로 흐르기 때문에 일단 흥미가 부족하죠.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기 전의 한 시간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조이는 맛이 없습니다.

 

요기가 바로 정상(등반가들이 두고 간 깃발 등 쓰레기더미가 작은 산을 이루고 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배우들의 면면은 히말라야의 고산들처럼 우뚝합니다만 이 들 간의 화학적 결합은 전혀 발생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잘 나가는 배우들 모아 놓고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르겠더군요. 롭과 벡의 아내인 키이라 나이틀리와 로빈 라이트는 멀리 집에서 전화 연기만 하더군요. 이런 역할에 이 정도의 배우를 캐스팅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산은 스릴러로서 최적의 소재입니다. 하지만 영화 에베레스트는 일단 긴장감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또한 상업 등반이라는 드라마로 가공할 수 있는 최상급의 소재 역시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PS : 태그에서 산을 누르시면 산에 관련된 더 다양한 영화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15.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