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2. 11. 4. 20:00

아르고(Argo) / 거장의 길로 가는 벤 애플렉

 

 

1952년 미국은 팔레비를 지원하여 이란에 친미정권을 수립했다. 정유시설은 미국의 기업으로 넘어가고 이란은 미국산 무기를 수입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던 팔레비 국왕은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다.

 

19791월 성난 국민들에 의해 정권이 전복되고 세계 각국을 떠돌던 팔레비는 10월 신병 치료차 미국에 입국했다. 이란 국민들은 미국에 팔레비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으나 카터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그해 114일 성난 이란인들은 미국대사관에 난입하여 수십 명의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고 팔레비와 맞바꾸자고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 미국으로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이란의 요구를 수용하면 '3세계의 똘마니들'이 미국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인질 가족들과 국민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편 이란인들이 미국 대사관에 난입하는 과정에서 여섯 명의 미국 외교관들이 탈출하여 캐나다 대사관에 피신했다. 미국으로서는 이 여섯명을 구출하는 게 급선무였으나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이에 CIA는 비밀 요원 토니 멘데스(벤 애플렉)를 투입하여 여섯 명을 구출하기로 한다. 캐나다의 영화 제작자로 변신해 테헤란에 잠입한 멘데스는 여섯 명의 외교관을 감독, 작가, 카메라맨 등 스태프로 위장시켜 이란을 빠져나가는 계획을 세운다.

 

이란 정부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 가운데 여섯 명이 사라졌다는 걸 알고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온 국민을 동원한다. 이란 정부가 서서히 숨통을 죄어오는 가운데 멘데스와 외교관들은 무사히 이란을 탈출할 수 있을까?

 

 

벤 애플렉의 세번 째 연출작 '아르고'(Argo)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미 결말이 공개된 만큼 긴장감이 덜할 수 있음에도 벤 애플렉은 한 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놀라운 솜씨를 발휘했다. 마지막에 멘데스와 외교관들이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벤 애플렉은 단 한발의 총성을 사용하지 않고도 외교관들의 내면 불안과 우왕좌왕하는 미국 정부 그리고 외교관들을 색출하려는 이란군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이라는 훈장이 있긴 하지만 벤 애플렉은 이제 배우보다는 감독으로 대우해야 할 것 같다. 전작 '더 타운(The Town,2010)'을 통해 감독으로서 입지를 굳힌 벤 애플렉은 배우로서도 꾸준히 여러 작품에 출연하였음에도 2003년 작 '페이첵' 이후에는 기억나는 작품이 거의 없을 정도로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두번 째 연출작인 '더 타운'은 단번에 그의 명성을 신통치 않은 배우에서 주목할 만한 감독으로 바꿔 놓았다. 은행강도라는 진부한 얘깃거리를 가지고 범죄의 대물림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룬 이 작품은 북미에서 제작비의 네 배가 넘는 수익을 거두었다.

 

북미 박스오피스 2위로 데뷔한 아르고는 입소문을 타고 관객몰이를 하며 현재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있다. 또 벌써부터 내년 아카데미상의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버트 레드포드에 이어 또 한 명의 배우 출신 거장이 탄생할지 기대가 크다.

 

토니 멘데스와 여섯 명의 외교관들은 198012일 무사히 이란을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멘데스가 기획한 가짜 영화 이름을 따 '아르고'라 명명된 이 작전은 1997년 국가기밀에서 해제되어 비로소 세상에 공개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여기까지다. 그런데 대사관에 억류된 수십명의 인질은 어찌 됐을까?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팔레비가 19803월 암으로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진전을 얻지 못하던 미국 정부는 4월 비밀리에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작전에 참가한 석대의 헬기가 추락하며 실패하고 말았고 미국은 체면을 구기게 되었다. 카터가 재선에 실패한 것은 당연했다. 1981121, 이란은 레이건이 취임한 이후에야 인질들을 풀어주었다. 사건이 발생한지 444일만이었다.

 

2012.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