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2. 12. 23. 11:00

레미제라블 / 무대의 감동을 스크린으로 전하다

 

오페라를 가리켜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예술이라고 하죠. 음악극인 오페라의 성격과 한계를 잘 설명한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인물의 감정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예술이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지요.

 

보다 대중적인 음악극이라 할 수 있는 뮤지컬도 기본적인 성격은 오페라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오페라에 비해 대사가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역시 음악과 노래가 극의 구성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은 그 동안 수 차례 영화화 된 작품이죠. 올해로 작품이 탄생한지 160년이 되었는데요, 이 번엔 캐머런 매킨토시의 뮤지컬 버전을 영상으로 옮겼습니다.(감독 톰 후퍼)

 

 

레미제라블이 뮤지컬 영화로 탄생한 것입니다. 사실 뮤지컬 영화는 익숙한 장르죠. 근래 들어서도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07), '맘마미아'(2008), '락 오브 에이지'(2012) 같은 작품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죠.

 

근데 레미제라블은 뛰어난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도 많더군요. 왜 그럴까요? 바로 중간 중간에 노래와 춤이 양념처럼 들어간 다른 뮤지컬 영화와는 달리 두 시간 사십분 이라는 긴 러닝 타임 내내 노래로써 진행되는 송 스루(Song Through)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노래들이 아바나 비틀즈의 친숙한 히트곡을 엮어 만든 '맘마미아''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는 달리 뮤지컬을 위해 작곡된 것이니 만큼 그다지 대중적이지도 않습니다.

 

영화에 삽입된 노래 가운데 장 발장 역의 휴 잭맨이 부른 'Suddenly' 한 곡 만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라고 하더군요. 따라서 정통 뮤지컬에 익숙한 팬이라면 모를까 '맘마미아'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상당히 지루한 두 시간 사십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노랫말이 원작을 잘 함축하고 있어 극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물론 소설 레미제라블을 읽어 보신 분이라면 더욱 쉽겠지요.

 

팝 뮤지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댄스 공연 장면도 없기 때문에 극의 흐름이 톡톡 끊기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원작의 힘이 바탕이겠지만 히트곡의 가사를 엮어서 만든 어설픈 뮤지컬 영화와의 차이를 단박에 느낄 수가 있습니다.

 

노래 잘 부르는 배우들을 캐스팅한 만큼 배우들의 노래 실력도 좋습니다. 다만 녹음 따로 녹화 따로 한 것이 아니라 동시녹음 방식이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뮤지컬 영화에 비해 노래가 약하게 들리는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뮤지컬이 주는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려 라이브 방식으로 제작했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영화는 영화죠. 영화를 보고 무대예술의 현장감을 느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굳이 라이브로 녹음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기는 어떨까요? 주요 출연자는 장발장 역의 휴 잭맨, 평생 장발장의 뒤를 쫓는 자베르 경감 역의 러셀 크로우, 장발장이 운영하는 공장의 여공에서 거리의 여자가 되는 판틴 역의 앤 헤서웨이, 판틴의 딸 코제트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입니다.

 

아무리 헐리우드에서 내노라 하는 배우들이라 해도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을텐데 주연 배우 모두 노래를 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더군요. 처음부터 뮤지컬 경험을 고려해서 배우를 캐스팅 했다고 하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자베르 역의 러셀 크로우가 장 발장 역을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뮤지컬 '오즈에서 온 소년'으로 토니상 남우주연상 수상 경력이 있는 휴 잭맨도 장 발장의 고뇌를 잘 표현했지만 중저음의 러셀 크로우가 장 발장 역에 더 잘 어울렸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휴 잭맨은 미성에 가깝더군요.

 

 

판틴이 맡긴 어린 코제트를 괴롭히는 여관 주인 테나르디에 부부역의 헬레나 본햄 카터와 사챠 바론 코헨의 감초 연기도 무겁게 흐르는 극에 활력을 불어 넣습니다.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는 뮤지컬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비쥬얼의 한계를 영화를 통해 해소하려 한 것 같습니다. 인력으로 거대한 배를 부두에 정박시키는 스펙터클은 압도적입니다. 비주얼에다 편집과 배우들의 연기까지 고려하면 뮤지컬 영화로 제작한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흥행한 뮤지컬 영화가 맘마미아라고 합니다. 극단적인 찬사와 송스루에 대한 우려가 나뉘는 가운데 레미제라블의 관객수가 불과 나흘만에 100만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과연 맘마미아의 453만명을 깨트릴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2012.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