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2022. 12. 24. 21:47

아홉 살 인생

‘아홉 살 인생’을 처음 접한 것은 윤인호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를 통해서였다. 2013년의 일이니 영화가 발표(2004)되고 거의 십 년이 지난 무렵이다. 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소설을 읽은 건 최근이다. 그런데 원작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삼십 년 전인 1991년도에 발간되었다.

 

1961년 생인 작가(위기철)는 자신이 아홉 살 시절의 이야기를 꺼낸다. 작가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니 아마도 1970년 무렵일 것이다.

 

여민의 식구는 채석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한쪽 눈이 먼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등 넷이다. 부산에서 깡패로 이름을 날리던 아버지는 식구들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온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가족에게 책임감 있는 가장이오, 동네에서는 남의 집 일을 발 벗고 돕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다.

 

아버지의 친구 집에 얹혀살던 여민네는 산동네 꼭대기지만 어엿한 내 집을 마련하게 된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비가 내리면 지붕에 물이 새고 수도가 없어서 날마다 물을 길어야 하는 그런 집이었다.

 

소설은 조숙한 아홉 살 여민이 허언증이 있는 기종과 새침데기 소녀 우림 등 친구와 악덕 임대업자인 풍뎅이 영감, 피아노 선생인 윤희를 짝사랑하는 골방철학자, 아이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고 폭력적인 월급 기계 담임선생 등을 만나 성장하는 과정의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티격태격하는 여민과 우림의 애정 전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르지만, 소설에서 여민과 우림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서른 즈음의 작가가 자신의 아홉 살 시절을 회상하며 쓴 이야기라 그런지 주인공이 아홉 살 소년임에도 무척 성숙하다. 가령 학교에 가지 않고 숲에서 놀다 온 사실을 어머니에게 들킨 여민은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는 어머니의 추궁에 이렇게 대답한다.

 

“학교에서만 배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소설이 발표된 1991년이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수필처럼 쓰는 사소설이라는 용어가 낯설 무렵이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뚜렷한 기승전결의 구조 없이 각 챕터 마다 한 가지 이야기가 떨어지며 다른 챕터로 넘어가는 구성이다. 그리 길지 않은(이마도 200자 기준 700~800매) 이 소설은 요즘으로 치면 경장편 분량으로 내용이나 구성 분량 면에서 상당히 시대를 앞서나간 셈이다.

 

쉽게 읽히는 이 소설의 가장 큰 단점은 여민 주변의 인물들이 소비적으로 쓰였으며 인물들 간에 유기적인 연결 고리가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소설이 일정한 이야기를 이루지 못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부산에서 알아주던 깡패던 여민의 아버지가 서울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이 없다.(어머니와 결혼하면서 손을 씻었다고만 되어 있다)

 

소설은 1991년 발간된 후 지금까지 수차례의 중판을 거쳐 100쇄 이상을 찍으며 영화와 만화 등으로 제작되었다.

 

쓰는 이가 읽은 책은 청년사에서 2016년 발간한 개정판이다.

 

https://blog.naver.com/blue_highway/10172299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