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5. 8. 21. 17:15

소수의견 / 대한민국은 피고다

 

왜 실화가 아니라고 하는데 다들 실화라고 믿으려 하는 것일까?

 

김성제 감독의 소수의견을 보고 든 생각은 용광로 같다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는 ~한민국떼한민국이 녹아 있었으며 시대의 그림자가 있었다.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공공의 적시리즈의 꼴통형사 강철중의 매력은 그렇고 그런 인물이라는 점이다. 생활고를 걱정하는 강철중에게 그의 모친은 넌 그래도 찔러주는 뒷돈도 받아 먹고 그러지 않았느냐며 핀잔을 준다. 강철중이 겉으로 보이는 대로 책상 서랍 속에 달랑 볼펜 한 자루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면 공공의 적은 단발에 그쳤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영화계에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고발물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순수한 창작의 한계일 수도 있으나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표현이 자유로워졌다는 걸 의미한다.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고발물들이 가끔씩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연출자 스스로가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고발을 넘어 판결을 내림으로써 관객을 배심원석이 아니라 방청객석에 주저앉힌다는 것이다.

 

더욱이 연출자는 세상을 둘로 나누고 선악구도를 형성함으로써 자신의 판결을 적극 합리화한다. 그런데 극이라는 것이 결국 세상의 모방품이라면 관객의 90%는 선과 악의 어느 한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강철중 같은 인물일 것이다.

 

소수의견은 다행히 이러한 과잉연출을 피해 관객 스스로가 피고 대한민국을 심판하게 한다.

 

 

변호사 윤진원(윤계상). 한 해에 배출되는 변호사 2천명 시대에 지방대학 출신의 신출내기 변호사가 맡을 수 있는 사건은 중국집으로 말하면 깐풍기도 탕수육도 아닌 짜장면을 잘 뽑는 일일 것이다.

 

역시 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기껏해야 짜장면 대신 짬뽕이 주특기일 것 같은 선배변호사 장대석(유해진)의 사무실에 얹혀 있는 윤진원에게 어느 날 국선변호사 일이 맡겨진다.

 

철거 현장에서 경찰을 치사케 한 박재호(이경영)의 변론을 맡으라는 것이다.

 

딱 봐도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사건. 하지만 박재호는 윤진원에게 자신은 현장에서 아들을 죽인 경찰에게 정당방위를 행사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반면 검찰 측은 박재호의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건 경찰이 아니라 철거용역이었다며 박재호의 유죄를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의 사건기록 열람 요구를 거부하는 검찰. 도대체 그 날의 진실은 무엇일까?

 

 

한편 신문사 사회부 기자 공수경(김옥빈)은 모종의 (국가적)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박재호 사건을 파기 시작하고 윤진원은 재판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박재호 사건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함과 아울러 사건 발생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 피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100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한다.

 

 

소수의견의 장점은 연출자가 스스로 모범답안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끝까지 몰입과 긴장감을 가지고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김성제 감독은 사건의 변호인 측과 검찰 측을 선악구도로 나누지 않는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변호인은 변호인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각각의 방식으로 무죄와 유죄를 주장하면서 상대를 기만하고 이 과정에서 몇 차례 반전이 발생하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법정드라마가 펼쳐진다.

 

박재호 역시 경계선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정당방위였음을 주장하지만 방청석에 있는 다른 아버지의 아들을 죽였다.

 

소수의견은 감정을 아끼고 선악구도를 탈피할 때 웰 메이드 사회물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연출자가 목소리를 낮춤으로써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대한민국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의 전모가 드러날 때 분노는 오롯이 관객의 몫이 된다.

 

 

주연을 맡은 윤계상의 연기 변신은 괄목상대라 할 만하다. 사건기자 역의 김옥빈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했다.

 

아쉬운 점은 법정드라마라 필연적으로 친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런 류의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감정이 자제되어 우리 관객에게 낯설다는 점과 더불어 흥행에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보인다.

 

끝으로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되는 건 연평해전과 마찬가지다. , 글쎄 실화가 아니라는데 왜 자꾸 용산을 생각하는 것일까? 영화가 철거민의 생존권을 다룬 작품도 아니고 (개연성 있는) 이런 일이 용산에서만 일어난 것도 아니다.

 

영화 소수의견은 이 시대의 짙은 그림자다. 용산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피고다.

 

2015.6.30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