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5. 8. 29. 07:18

스틸 앨리스 / 존재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줄리안 무어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긴 스틸 앨리스’(Still Alice, 감독 리처드 그랫저 & 워시 웨스트모어랜드)는 조발성 치매로 인해 자기 자신을 지워가는 저명한 언어학자의 투병과 가족들의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미 동부 명문 컬럼비아대학교의 언어학과 교수이자 자상한 남편 존(알렉 볼드윈)과 함께 세 남매를 둔 어머니인 앨리스(줄리안 무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행복한 가정을 가진 앨리스에게 불행이 찾아 온 건 유전으로 인해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하고 부터입니다.

 

강연 도중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 가벼운 증세로 시작한 알츠하이머병은 빠른 속도로 앨리스의 삶을 지워나갑니다. 앨리스는 집안의 화장실을 찾지 못해 바지에 실례를 하고 연극배우인 딸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마저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런 아내와 엄마를 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착잡할 따름입니다. 앨리스 역시 차라리 암이면 부끄럽지나 않을 것 아니냐며 쉰이라는 너무나 이른 나이에 자신에게 내린 저주를 원망하죠. 그런 그녀는 아직은 정신이 남아 있을 때 노트북에다 스스로 자살을 권하는 동영상을 녹화해두기도 하지만 상태가 심해진 후에는 자살 시도조차 맘대로 하지 못합니다.

 

 

정신이 지워지고 인격이 무너져 내린 후에 인간은 무엇으로 남을까요?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스틸 앨리스는 치매라는 질병이 아닌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것은 기억과 관계라고 봅니다. 기억은 내재된 것인 반면 관계는 타인과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죠. 따라서 내재된 기억이 지워지더라도 관계가 보전되면 타인의 시각으론 여전히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친구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기억은 관계를 지배합니다. 만약 타인의 기억마저 지워진다면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영화에서 앨리스의 가족들은 앨리스를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어쩌면 영화는 존재는 사랑으로 증명된다는 걸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발병 초기 앨리스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우스운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병이라며 자신과 환자들을 위로합니다. 마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립니다만 솔까말죄지은 사람이 미운 게 인지상정이죠. 탄탄했던 가족의 관계라는 것도 앨리스의 기억 상실과 비례해서 약해지고 언젠가 뼈만 남게 되었을 때 앨리스는 가족에게 무엇일까요? 스틸 마더? 스틸 와이프? 스틸 앨리스?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를 둔 가족의 일상을 그렸습니다만 스틸 앨리스가 아쉬운 건 어거스트 가족’(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 August : Osage County)이 보여준 리얼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앨리스 가족은 마치 쇼 윈도우가족처럼 닥쳐온 재앙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영화의 공동 감독인 리처드 그랫저는 루게릭 병으로 지난 3월 사망했습니다. 근육이 위축되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정신이 위축되어 삶의 흔적이 지워지는 환자의 이야기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자신을 잃어가는 공포를 표현한 줄리안 무어의 연기도 훌륭합니다만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 이어 작은 영화에 잘 어울린다는 걸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제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의문부호는 그만 떼도 좋을 것 같습니다.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