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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제니시스 / 아놀드, 터미네이터를 구원하다?
‘알비백’(I'll be back).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인상 깊은 대사를 꼽으라면 분명 이 한마디 일 것이다. 처음 ‘터미네이터’를 촬영할 때만 하더라도 이 짧은 대사조차 발음하기 어려워했다는 오스트리아 이민자 출신의 미국배우는 이후 터미네이터를 페르소나로 하여 엄청난 재산을 모았으며 정계에 진출하여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대사대로 터미네이터로 돌아왔다.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터미네이터는 한 때 실베스터 스탤론의 페르소나 람보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이름이었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다른 이름이 람보이듯이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다른 이름은 바로 터미네이터였다.
하지만 헐리웃은 정치계로 떠난 터미네이터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헐리웃의 자본은 지난 2009년 과감히 아놀드를 빼고(얼굴만 살짝 비춰주었다) 터미네이터라기보다 트랜스포머에 더 가까운(트랜스포머의 기술진이 제작에 참여했다) 터미네이터 없는 터미네이터(터미네이터 : 미래 전쟁의 시작, Terminator : Salvation)를 내놓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관객들은 여전히 아놀드를 원했다.
▲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2009), 트랜스포머 기술진의 참여로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보이는 터미네이터의 모습
‘터미네이터 : 제니시스’(Terminator Genisys, 감독 앨런 테일러)는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컴백한 작품이다.
영화는 후속편이라기보다는 오리지널 작품(1984)의 리부트에 가깝다.
1984년의 LA. 섬광과 함께 2029년의 미래에서 터미네이터가 도착한다.
인간이 개발한 인공지능 방어체계인 스카이 넷이 스스로 진화를 거듭한 결과 인류에게 핵공격을 퍼부었다. 무려 30억명이 넘는 인류가 몰살당하고 생존한 인류는 존 코너를 지도자로 추대하고 스카이 넷에 대항한다.
수세에 몰린 스카이 넷은 아예 존 코너의 탄생을 막기 위해 그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없애려 과거로 터미네이터를 보낸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출세작인 ‘터미네이터’(1984)는 ‘에일리언’(오리지널은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1979년에 제작되었으나 2편은 1986년 제임스 카메론이 메가폰을 잡았다) ‘로보캅‘(폴 버호벤, 1987) 등과 더불어 1980년대를 대표하는 SF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 가운데 ‘로보캅’은 작년에 리부트가 되었지만 오리지널 작품이 가지는 로보캅의 고뇌와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외면하고 그저 비쥬얼만 업 그레이드 해서 리부트를 한 결과 반응이 좋진 않았다.
한편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또 다른 SF 대표작인 ‘토탈리콜’(1990) 역시 지난 2012년 리부트 되었지만 오리지널과의 정면 승부를 피하기 위해 이야기를 살짝 비튼 결과(오리지널 작품은 화성을 배경으로 했으나 리부트 작품은 지구를 배경으로 했다) 원작의 맛을 살리지 못했으며 특히 주인공 퀘이드 역과 아내 로리 역을 연기한 콜린 파렐과 케이트 베킨세일은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샤론 스톤의 포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와 같이 두 편의 자신의 대표작이 다른 배우들에 의해 망가지는 것을 본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직접 출연함으로써 자신의 작품과 페르소나를 구원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터미네이터’를 구원했을까?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앞 선 네 편의 터미네이터 시리즈 가운데 오리지널 작품과 2편(심판의 날, 1991)을 승계한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많이 비틀긴 했지만 기본 골격은 오리지널 작품과 같다. 터미네이터와 카일 리스가 과거에 도착해서 강제로 옷을 뺏어 입는 장면 등은 오리지널 그대로를 재현한다.
그런가하면 이병현이 연기한 액체금속 터미네이터 T-1000은 원래 2편에 등장했던 모델이다. 따라서 일부 장면은 오리지널과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두 번 째 작품(두 작품 모두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했다)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들을 그저 성공한 전작들에 대한 오마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프리퀄인 4편(미래전쟁의 시작)을 제외하고 후속작들의 인상적인 장면들은 실은 오리지널에서 써먹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 터미네이터1(1984), 사진 위)과 터미네이터 제니시스(2015, 사진 아래)에서 열연 중인 아놀드 슈왈제네거
예를 들어 2편과 3편에서 상대 T-1000과 T-X가 존 코너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 가까운 인물들을 헤치고 그 인물로 변신해서 존 코너를 찾는 신은 오리지널에서 터미네이터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이 사라 코너의 행방을 찾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를 죽이고 목소리를 변조해서 사라의 전화를 받는 장면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오리지널에서는 터미네이터가 사라 코너의 어머니를 죽였음을 암시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T-1000과 T-X가 존 코너를 쫓으면서 엘리베이터와 자동차 위에 올라 ‘칼손’을 밀어 넣는 장면 역시 오리지널 작품에서 터미네이터의 손이 창문을 깨고 사라 코너의 차 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과 일치한다.
쓰는 이는 개인적으로 터미네이터 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오리지널을 든다. 끊임없는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제임스 카메론의 뛰어난 연출은 저예산 SF였던 이 영화를 오늘날 걸작의 반열에 올렸다. 터미네이터 특유의 긴장감은 2편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문제는 3편(라이즈 오브 더 머신)이다. 따라한다고 했지만 ‘쩌는’ 긴장감은 증발하고 말았다. 왜 같은 장면을 반복했는데 긴장감의 차이가 발생했을까? 충분한 선행학습의 결과 이미 관객들이 알기 때문이다. 다음 장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렇다면 5편 제니시스의 성패는 익숙함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긴장감을 유발하는가이다. 오리지널을 승계한 제니시스의 초반은 익숙함에 충실하다. 하지만 후반은 낯설다. 이야기도 변형(미래에서 온 존 코너가 최첨단 터미네이터 T-3000으로 변신했다는) 되었지만 전개하는 과정에서 3편의 실수를 인식한 탓인지 터미네이터 시리즈 특유의 표현들은 빼버렸다.
아울러 존 코너(제이슨 클락)의 변신에 따라 오리지널에서는 터미네이터에 맞서다 죽은 카일 리스(제이 코트니)와 T-800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개편되었다. 새로운 사라 코너 에밀리아 클라크의 존재감은 원조 사라 코너 린다 해밀턴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 원조 사라 코너 린다 해밀턴(사진 위)과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사라 코너 역을 맡은 에밀리아 클라크
이와 같이 이야기의 변형과 낯선 전개에도 불구하고 ‘제니시스’가 터미네이터의 적자 취급을 받는 건 아무래도 오리지널을 승계했다는 점과 돌아온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리부트 된 터미네이터는 흥행 실적에 따라 새로운 시리즈로 이어질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다음 시리즈에서는 새로운 터미네이터 T-800을 보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터미네이터와 등장인물들은 타임 루프에 갇혔다. 무궁한 이야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터미네이터를 구원한 것인가? 터미네이터가 ‘올드한’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구원할 것인가? 양자의 관계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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