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SF극장 2015. 7. 6. 18:00

터미네이터 / 터미네이터 연대기

 

아마 세계 영화사상 가장 큰 반전이라면 원래 악당이었던 터미네이터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이 후속편에서 인류의 수호천사로 변신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 터미네이터는 원래 인류를 말살하고 인류의 지도자인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개발된 기계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등장한 모든 악당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의 변신에 관객들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캐릭터의 변신은 후속편에 강한 흥미를 불어 넣었다.

 

▲ 터미네이터1(1984)

 

1991년 제작된 ‘터미네이터2’(심판의 날, 1991)는 시리즈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록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주었으나 저예산 영화에 불과하던 ‘터미네이터’를 20세기에 인류가 만든 가장 기념비적인 SF물의 하나로 격상시켰다.

 

그러면 후속편이 오리지널을 구원했는가?

 

이에 대해 쓰는 이의 생각은 다르다. ‘터미네이터2(1991)가 '터미네이터'(1984)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터미네이터'가 있었기에 ’터미네이터2‘를 비롯한 후속편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다만 뛰어난 작품성을 가진 원작에 기댄 사실상 원작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후속편의 제작이라는 영화계의 관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경우 실제로 후속 작들이 원작을 오마주한다고 할 만큼 원작의 표현을 많이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터미네이터1(1984)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인상적인 장면들, 예를 들어 사라 코너 모자를 찾아내기 위해 그들을 헤치러 온 터미네이터가 코너 모자의 지인들을 죽이고 그들로 변신을 해서 코너 모자와 통화를 하는 장면이나 코너 모자가 타고 가는 자동차에 올라타고 칼손을 집어넣는 장면 등은 모두 오리지널에서 사용했던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하반신이 절단되거나 못쓰게 된 터미네이터가 상체를 사용해서 기는 장면 역시 오리지널의 강렬한 잔영이 있는 이 시리즈의 클리셰이다.

 

일정 시간마다 사건이 반복되어지는 타임 루프를 활용한 작품이지만 시리즈 3편까지의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 터미네이터1(1984)

 

1997년. 인류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인공지능 시스템인 ‘스카이 넷’이 진화를 하고 공격함에 따라 파멸하고 만다.

 

겨우 살아남은 인류는 존 코너라는 인물을 지도자로 추대하고 ‘스카이 넷’에 맞서 싸운다. 그렇게 해서 인류가 기계에 대응하자 2029년, ‘스카이 넷’은 터미네이터를 1984년으로 보낸다. 존 코너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죽임으로써 존 코너의 탄생을 막기 위함이다.

 

이 정보를 입수한 존 코너는 측근인 카일 리스를 1984년으로 보내 어머니인 사라 코너를 보호하도록 한다.

 

시리즈 1편은 살인무기 터미네이터 T-800과 사라 코너-카일 리스의 대결이다.

 

그런데 1편에서 카일 리스는 사라 코너를 보호하다 터미네이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죽기 전에 단 한번 사라 코너와 관계를 가졌는데 그렇게 해서 존 코너가 탄생한 것이다. 즉 카일 리스가 존 코너의 아버지인 것이다.

 

숨 막히는 긴장감과 반전은 대번에 영화 팬들을 사로잡았고 단돈 640만불의 예산으로 만든 작품은 7년 후 1억불짜리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재탄생했다.

 

▲ 터미네이터2(1991)

 

2편이 1편과 달라진 것은 터미네이터 T-800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과 보호할 대상이 사라 코너에서 어린 존 코너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스케일을 키우고 더욱 강력한 T-1000의 등장시켜 관객들을 눈을 붙잡았지만 1편과 2편의 스토리는 사실상 동일하다. 다만 1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기계에 인간성을 이입함으로써 감동을 부여한 점은 2편이 다른 속편들과 달리 상업적 성공을 넘어 SF사에 길이 남을 작품으로 탄생한 원인이라고 하겠다.

 

▲ 터미네이터2(1991), 기계에 인간의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감동을 높였다

 

이미 선거판으로 달려가고 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붙잡고 찍은 3편(라이즈 오브 더 머신, 2003)은 성인이 된 존 코너를 헤치러 온 터미네이터 T-X가 여성이라는 것 외에는 전작들과 차별성이 없는 작품이다. 심지어 개량 모델이라는 T-X는 T-1000보다 강해 보이지도 않는다.

 

▲ 터미네이터3(2003)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1편과 2편 그리고 3편에 등장하는 터미네이터 T-800이 실은 모두 다른 개체라는 점이다. 각 작품에서 T-800은 모두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런데 어떻게 부활했을까? 바로 모습만 동일한 다른 개체를 미래에서 지속적으로 보냈기 때문이다.(그래서 3편에서는 T-850으로 살짝 업그레이드했지만 8-800과 850은 사실상 동일한 기종이다)

 

▲ 터미네이터2(1991)

 

이 시리즈가 ‘종결’ 되었다고 생각할 즈음 탄생한 작품이 프리퀄인 ‘미래전쟁의 시작’(Salvation, 2009)이다. 하지만 시리즈 가운데 유일하게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출연하지 않았으며(얼굴만 살짝 보여주는 정도) 등장하는 로봇들이 터미네이터라기보다 트랜스포머에 가까워 보이는 이 작품은 앞서 제작된 3편 ‘라이즈 오브 더 머신’보다 더 처참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 터미네이터4(2012), 트랜스포머 제작진의 참여로 터미네이터가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터미네이터’는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구원한 작품이다. 처음 ‘터미네이터’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그 짧은 대사 '알비백‘(I'll be Back)조차 발음하기 어려워했다는 오스트리아 이민자 출신의 보디빌더는 터미네이터를 페르소나로 배우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정계까지 진출하여 캘리포니아 주지사(2003~2011)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오늘을 만들어준 작품이 처참히 망가지는 걸 본 슈왈제네거는 돌아와 이제는 자신이 ‘터미네이터’를 구원하기로 한다. 바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Terminator Genisys)다.

 

‘터미네이터’가 이민자 출신의 보디빌더를 구원했을까? 아니면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터미네이터’를 구원하게 될까?

 

2015.7.06 블루 하이웨이

 

 


터미네이터 (1984)

The Terminator 
9.3
감독
제임스 카메론
출연
아놀드 슈왈제네거, 마이클 빈, 린다 해밀턴, 폴 윈필드, 랜스 헨릭슨
정보
액션, SF | 미국, 영국 | 108 분 | 198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