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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하트 / 스코틀랜드 독립 투쟁의 역사 그린 대서사시
오는 18일 있을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 결과를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죠.
만약 투표 결과가 독립 찬성으로 나오면 1707년 병합된 이래 스코틀랜드는 무려 307년만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를 앞두고 다시 주목 받는 영화가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1996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멜 깁슨에게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주며 무려 5개 부문을 수상했던 '브레이브 하트'(Braveheart)입니다.
13세기 후반 알렉산더 2세가 사망하자 스코틀랜드의 왕위는 무주공산이 됩니다. 귀족들은 저마다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며 다툼을 벌였죠.
이 틈을 타고 영국왕 에드워드1세는 아예 스코틀랜드를 먹으려고 들죠. 그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그리고 잉글랜드로 나뉘어 있는 브리튼 섬의 통합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인물입니다.
앵글로색슨족이 주축인 잉글랜드와 달리 스코틀랜드는 켈트족의 국가였기 때문에 두 나라는 민족도 언어도 달랐다고 합니다.
시대적 분위기를 아시겠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속으로 들어갑니다.
윌리엄 월레스(멜 깁슨)라는 스코틀랜드의 농사꾼이 있었습니다. 어려서 잉글랜드에 의해 가족을 잃고 삼촌에게 양육된 월레스는 장성해서 마을로 돌아옵니다.
아름다운 처녀 머론(캐서린 맥코맥)을 만난 월레스는 영주의 초야권으로부터 마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몰래 결혼을 하죠.
하지만 머론은 어느 날 시장에 나갔다가 스코틀랜드를 점령하고 있던 잉글랜드군으로부터 봉변을 당하다 죽고 맙니다. 머론의 죽음은 한낱 농사꾼이었던 월레스를 반란군 지도자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따르는 소수의 무리를 이끌고 잉글랜드군을 급습하여 소소한 승리를 거두었으나 승리가 거듭되자 점차 세가 확대되어 어엿한 농민군을 이끌게 된 것입니다.
백성들의 안위는 눈 밖인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오직 왕위 계승에만 관심을 가지는 동안 농민군을 이끈 월레스는 승승장구하여 1297년 역사적인 스털링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대파하고 거의 독립을 쟁취하게 됩니다.
이러자 왕위 계승을 위해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월레스가 필요해진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그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죠.
하지만 기사 작위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월레스는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지를 호소하는 귀족들에게 말합니다. '백성들에게 자유를 준다면 그들이 당신들을 지지할 것'이라고.
한편 잉글랜드왕 롱생크(에드워드 1세)는 월레스를 회유하기 위해 나약한 왕자 대신 프랑스 왕실 출신(당시 잉글랜드 왕실은 프랑스계인 플랜태저넷 가문이었습니다)의 며느리 이사벨라(소피 마르소)를 사절로 보냅니다.
다른 거 있겠어요? 휴전하자. 그러면 토지도 주고 막대한 상금도 하사하겠다. 이 거죠.
그러나 월레스는 잉글랜드왕의 회유를 거절합니다. 오로지 조국의 완전한 독립만이 그가 바라는 바였습니다. 그에게 자유가 없는 삶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땅도 싫고 금은보화도 거절하는 월레스를 본 이사벨라는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그를 돕죠. 사랑에 눈이 멀어 잉글랜드의 계획을 낱낱이 월레스에게 알려주게 된 것입니다.
이사벨라의 귀띔으로 목숨을 건진 월레스가 그녀에게 왜 나를 도와주는 거냐고 묻자 이사벨라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이 그런 눈빛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ㅋ
월레스는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얻기 위해서는 소극적으로 방어만 해서는 안되고 잉글랜드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월레스가 잉글랜드 북동부의 요크를 점령하자 롱생크는 커다란 위기감을 느끼죠.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은 조국의 독립보다는 잉글랜드왕 롱생크의 인정을 받아 왕위를 차지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죠. 그들은 과격한 독립영웅 월레스가 서서히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이쯤되면 잉글랜드 왕실과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짐작하실 수 있겠죠.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는 월레스의 주장을 묵살하고 에드워드 1세에게 회유됩니다.
1298년 벌어진 폴커크 전투에서 귀족들의 배신으로 패배한 월레스는 숨어 지내다 에든버러로 오라는 전갈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월레스를 잉글랜드에 넘기고 왕위를 계승하기 위한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비열한 계략이었죠. 월레스도 예수님처럼 동족에 의해 죽게 된 거죠.
이윽고 런던으로 끌려 온 월레스에게 이사벨라가 애원합니다. 제발 왕에게 자비를 구하라고. 하지만 월레스는 자유가 없다면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형장에서 자비대신 자유를 외치며 끔찍한 최후를 맞이 합니다.
'브레이브 하트'는 7백년 전에 실존했던 스코틀랜드의 민족 영웅인 윌리엄 월레스의 일대기를 그린 대서사시입니다. 러닝 타임이 177분에 이르는 대작이죠. 하지만 지루할 틈이 전혀 없을 정도로 이야기가 정교하게 전개됩니다.
사실 역사를 다룬 작품들은 자칫 실마리를 놓치면 뭐가 뭔지 모르게 끝나버리죠. 더구나 이 작품은 잘 알지도 못하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영웅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브레이브 하트'는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적당히 섞어서 영국의 역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따라갈 수 있게 이야기를 촘촘하게 직조했습니다.
아무리 시각적 영향력이 큰 시대라도 역시 극의 힘은 '서사'(Narrative)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기술적으로 비약적인 진보를 했으나 여전히 이야기의 힘이 약한 우리 영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천만 이상이 든 영화라고 해도 왜 해외에서는 별 반응이 없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너무나도 감동적인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왜 해외에서는 먹혀들지 않을까요?
'명량'은 이순신 장군이 고문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순신 장군이 왜 고문을 받는지 영화만 보면 알 수 있겠습니까? 막연히 나쁜 놈들의 모함을 받아서? 우리 역사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이 보면 어떤 추측을 할까요? '명량'은 서사가 친절하지 않은 작품입니다.
롱생크는 월레스를 잔인하게 처형했지만 스코틀랜드 민중은 독립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는 악인으로 묘사되었지만 다리가 길어 롱생크(Longshank)로 불린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그리고 잉글랜드로 나뉘어 있던 브리튼섬의 통일을 열망했던 적어도 영국의 입장에서는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아일랜드와 웨일즈, 스코틀랜드 그리고 잉글랜드를 하나로 묶은 오늘날 대영제국(Great Britain)의 밑그림을 그린 왕이죠.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스코틀랜드를 포기하지 않고 죽고 나면 자신의 시신을 매장하지 말고 전장에 동행시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앙드레 모로아 著 영국사)
롱생크가 죽고 잉글랜드의 왕위는 나약한 아들 에드워드 2세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는 부왕 에드워드 1세와는 달리 스코틀랜드를 차지하겠다는 열망이 부족한 인물이었습니다. 1314년 배넉번 전투에서 승리한 스코틀랜드인들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독립을 쟁취하죠. 그런데 어쩌다가 다시 영국에 합병되었을까요?
아시다시피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버진 퀸이었습니다. 1603년, 여왕이 죽고 오촌 조카이자 정적이었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 제임스 6세가 영국의 왕위를 계승하게 되죠. 이로써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가와 영국의 튜더가는 단일 왕조가 되었다가 1707년 양국이 합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1세와 그 시대의 이야기는 이미 수 차례 영화화 된 거 아시죠?('골든 에이지' 리뷰 참조)
오는 9월18일, 과연 스코틀랜드인들은 윌리엄 월레스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까요?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신장하기 위한 역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월레스가 무장봉기로써 얻고자 했던 독립을 오늘날의 스코틀랜드인들은 투표로 정하니 이만하면 지난 7백년 간 인류가 많이 진보한 건가요? 암튼 자유롭게 독립을 외쳐도 사지를 찢어 죽이지 않는 시대에 태어난 걸 감사히 여겨야죠. 물론 21세기인 지금도 지구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참수도 하고 그럽니다만.
PS : '브레이브 하트'는 1996년 미국 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5개 부문을 휩쓸며 최다관왕에 올랐지만 같은 해 영국 아카데미에서는 음향상 등 3개 기술 부문의 수상에 그쳤습니다.
201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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