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4. 3. 1. 22:00

필로미나의 기적 / 나는 최고의 드라마를 보았다

 

 

'필로미나의 기적'(Philomena,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은 드라마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수작입니다.

 

1952년 아일랜드.

 

필로미나(주디 덴치)는 첫사랑과의 관계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고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미혼모 수용 시설에 맡겨집니다.

 

3년 후 필로미나의 아이 앤터니는 필로미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어디론가 입양이 됩니다. 수용 시설에 들어올 때 양육권 포기 각서에 동의했기 때문이죠.

 

 

그로부터 50년의 세월이 흘러 필로미나는 살아 있으면 쉰이 되었을 앤터니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서는 한 번도 떠나보낸 적이 없는 앤터니.

 

마침 필로미나의 기막힌 사연을 그녀의 딸이 전직 BBC 기자인 마틴(스티븐 쿠건)에게 털어놓고 마틴은 한 신문사의 후원을 받아 필로미나와 함께 그녀의 아들을 찾아나서기로 합니다.

 

그런데 수소문을 해보니 아들은 미국으로 입양되었다는군요. 마틴과 필로미나는 50년 전 필로미나가 수용돼 있던 수녀원을 찾아가 당시 입양 관련 서류를 보여달라고 하지만 수녀원 측의 답변은 화재가 발생해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필로미나의 친필 서명이 있는 양육 포기 각서만 보여주죠. 모두 불에 탔는데 양육 포기 각서만 있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마틴과 필로미나는 쓸쓸히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죠.

 

마틴은 혹시나 싶어 미국 쪽에 문의를 해봅니다.

 

놀랍게도 미국에는 앤터니가 1955년 해스가에 입양되었으며 마이클 해스라는 새 이름을 부여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미국인들 되게 뚱뚱하던데 혹시 비만이 아닐까? 노숙자가 되지 않았을까?' 필로미나는 별의별 상상을 다하며 꿈에도 잊지 못할 아들을 만나러 미국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정규 클래스의 비행기를 처음 타고 50년 만에 아들을 만나러 가는 아일랜드 할머니의 상기된 표정. 1934년 생인 주디 덴치의 완숙한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워싱턴에 여장을 풀고 마이클 해스라는 인물을 검색해 보던 마틴은 곧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이클 해스라는 인물이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법률 자문관을 지낸 엘리트 관료였기 때문이죠.

 

더욱 놀라운 사실은 마틴 자신이 BBC 기자 시절 백악관에서 마이클 해스를 만난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 필로미나의 기적이 이루어진 것인가요? 궁금하시죠. 궁금하시면 정식 개봉시(2014. 4) 극장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일랜드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여러 모로 닮았습니다. 오랜 기간 이민족의 침략을 받은 한 많은 민족이라는 점. 그런데 부끄러운 출양(出養)의 역사까지.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필로미나'는 전 BBC 기자 마틴 식스미스의 ' 필로미나의 잃어버린 아이'라는 작품을 극화한 영화입니다. 말하자면 실화를 바탕(Inspired by a true story)으로 한 작품인데 우리나라나 헐리웃이나 요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의 전성기입니다.

 

이번 86회 아카데미만 해도 작품상 후보에 오른 아홉 편의 영화 가운데 '캡틴 필립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아메리칸 허슬', '노예 12',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그리고 이 작품 '필로미나의 기적' 등 여섯 편이 실화를 토대로 한 원작이 있거나 직접 실화를 발굴하여 극화한 작품입니다.

 

이게 새로운 트랜드인지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실화임을 강조해서 감동을 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는 반면 헐리웃은 반드시 감동을 일으키기 위해 실화를 찾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아메리칸 허슬' 그리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등은 어떤 감동을 받기는 어려운 영화들이죠.

 

 

다시 '필로미나의 기적'으로 돌아와서 이 영화는 잔잔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허를 찌르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폭풍 같은 감동을 일으키는 드라마입니다.

 

마틴과 필로미나가 마이클을 찾아 미국으로 간 이후 무려 다섯 차례나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 때마다 마치 절벽에서 떨어지듯 무시무시한 전율이 일더군요.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입양아가 미국 사회에서 성공을 했다는 꿈 같은 이야기가 보도되곤 하는데 제가 맛보기로 말씀드린 앤터니가 미국에서 고위 공직자로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건 짐작지 못한 인생 역전의 드라마입니다. 필로미나는 자신의 아들이 미국에서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마틴에게 내가 키웠으면 이렇게 되지 못했을 거라 말합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게 인생이죠.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이 시간의 순환을 보여준다면 '필로미나의 기적'은 공간의 순환을 보여줍니다. 마틴과 필로미나는 결국 앤터니를 찾아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말씀 드릴 수는 없는데 무려 오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필로미나에 대한 수녀원 측의 대응은 거의 범죄 수준입니다. 평생을 고통 속에 참회하라는 것이 수녀원 측의 이유입니다.

 

필로미나를 연기한 주디 덴치(좌)와 실제 인물인 필로미나 리(Philomena Lee)

 

영화에 이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봤기 때문에 이번 제 86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 가운데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은 '네브래스카'''를 제외한 일곱 편을 감상했습니다.

 

현지 분위기는 '그래비티', '아메리칸 허슬', '노예 12'3파전이라고 전해지던데 저보고 꼽으라면 이 작품 '필로미나의 기적'을 택하겠습니다. 저는 정말 최고의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드라마가 가진 힘, 반전 스릴러에 절대 못지 않습니다.

 

작품상 수상 여부에 관계 없이 이 작품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20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