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4. 1. 30. 01:00

인사이드 르윈 / 어제 같은 오늘 같은 내일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은 한 장의 사진 같은 영화입니다.

 

 

1961, 포크 뮤직을 공연하는 뉴욕의 한 까페에서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이이삭)가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무대를 마친 그에게 까페의 주인이 친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나가보라고 말합니다.

 

까페 밖으로 나온 르윈은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심하게 얻어 맞습니다. 역시나 불친절한 코엔 형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주지 않고 페이지를 넘겨버립니다.

 

 

다음부터 벌어지는 사건들은 어떤 사건을 먼저 꺼내더라도 진행에 문제가 없을 만큼 영화는 기승전결과 무관한 흐름을 보입니다.

 

동가식서가숙하는 르윈은 가끔 신세를 지는 골파인 교수의 집에서 늦잠을 자고 주인이 없는 집을 나오다 얼떨결에 그 집 고양이를 떠맡는 신세가 됩니다. 르윈이 나오려는 순간에 고양이가 따라나오고 그만 닫힌 문이 안 쪽에서 잠겨버렸기 때문이죠.

 

할 수 없이 고양이를 데리고 이번엔 친구인 짐(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아파트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친구인 짐의 동거녀인 진(캐리 멀리건)은 르윈에게 당신의 아이를 가졌을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제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운데 아이라니. 그것도 친구의 여자친구를 임신시켰으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르윈은 짐에게 여자를 잘 못 건드려 일이 발생했다며 돈을 좀 빌려달라고 말합니다. 진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일상 아니 인생 자체가 뒤틀리고 엉망인 르윈은 그 날 저녁 고양이를 데리고 골파인 교수의 집을 찾습니다. 골파인 교수는 자신의 친구들 앞에서 한 곡 근사하게 뽑아 줄 것을 부탁하죠.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하던 르윈은 그러나 곧 내가 취미로 노래를 부르는 줄 아느냐며 버럭 화를 내고 일어섭니다. 그런데, 세상이 우째 이런 일이.. 너무나 무안한 나머지 방으로 들어갔던 골파인 교수의 부인이 고양이를 안고 나타나서는 우리 집 고양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겁니다.

 

르윈이 데리고 온 고양이는 골파인 교수의 고양이가 아닌 길고양이였던 거죠. 진의 집에서 고양이를 잃어버렸던 르윈은 운좋게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데리고 왔는데 실은 다른 놈이었던 겁니다.

 

 

도대체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르윈. 그는 정식 가수로 데뷔하고자 오디션을 보러 차를 얻어 타고 시카고로 떠납니다.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가는 길도 편치 않지만 여정은 생략하기로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시카고에 도착한 르윈은 프로듀서 앞에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지만 그만 퇴짜를 맞고 맙니다.

 

이제 르윈은 다시 어제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요?

 

 

제가 스틸 사진 같은 영화의 장면들을 대략 정리하긴 했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인사이드 르윈'은 기승전결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 중요한 영화는 아닙니다.

 

전통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이 기승전결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독자나 관객을 효과적으로 끌고가기 위함인데 코엔 형제의 영화는 이처럼 기승전결 공식을 파괴하고도 실의 갈라진 끄트머리처럼 혼란을 주지 않고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사이드 르윈'은 코엔 형제의 대표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스릴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몰입도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못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 형제의 마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코엔 형제의 작품을 보면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보다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더 중요한 예술이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특별한 줄거리를 가지고 진행되지 않는 '인사이드 르윈'도 그런 작품입니다. 공교롭게도 '인사이드 르윈'2013년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놓고 경쟁한 '가장 따뜻한 색, 블루'도 이런 스타일의 작품이죠.

 

영화의 도입부에서 르윈이 폭행을 당했던 이유는 마지막에 가서 밝혀집니다. 영화가 한 바퀴 돌아서 폭행당한 순간으로 돌아옴으로써 자연스럽게 이유가 밝혀지는 구조죠. 르윈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이처럼 순환하며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이룹니다.

 

'인사이드 르윈'은 시작과 끝이 없는 영화입니다. 순환 구조에 있어서는 도대체 어디가 출발점이고 도착점인 것일까요? 오늘은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점인 동시에 지나 온 시간의 도착점이기도 하고 지나온 시간의 도착점인 동시에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아마 르윈의 인생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생각컨대 우리의 인생살이가 다 그러하지 않습니까?

 

 

영화처럼 저도 리뷰를 처음으로 되돌려 보기로 하겠습니다. 왜 저는 '인사이드 르윈'이 한 장의 사진 같다고 했을까요? 사진은 순간을 포착한 것이지만 사진 속의 순간은 영원합니다. 순간은 영원으로 영원은 한 순간으로 돌고 돌듯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반복하는 게 르윈의 인생입니다.

 

2014.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