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러너

 

일 전에 '1월의 두 얼굴'을 소개하면서 영화가 그리스 신화 테세우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메이즈 러너'는 아예 플롯 자체를 테세우스의 신화에서 가지고 왔더군요.

 

'1월의 두 얼굴'에서 잠깐 소개했던 테세우스의 신화를 다시 한번 살짝 언급합니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는 스스로 공물이 되어 크레타로 들어갑니다. 아테네는 9년마다 각 일곱 명의 처녀총각을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게 바치고 있었는데 미노스는 이렇게 받은 공물을 소머리를 한 아들 미노타우르에게 밥으로 주었죠.

 

미노타우르는 한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에 살고 있었는데 테세우스에게 반한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미로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줍니다.

 

그 방법이란 다름이 아니라 실 끄트머리를 입구에 묶고 들어가라는 것이었죠.

 

아리아드네로부터 방법을 배운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르를 때려눕히고 무사히 미로를 빠져 나옵니다.

 

​▲ 그리스 신화 테세우스 이야기를 이미지화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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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대시너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메이즈 러너'(The Maze Runner, 감독 : 웨스 볼)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한 소년이 사방이 높이 30미터의 콘크리트 벽으로 갇힌 한 장소에 도착하면서 시작합니다.

 

'글레이드'(Glade)라고 불리는 그 곳에는 갤리(윌 폴터)를 비롯한 수십 명의 소년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보급품에 의존해 반 자급자족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는데 러너라고 불리는 소수의 소년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글레이드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글레이드는 거대한 미로로 둘러싸인 장소였죠. 콘크리트 벽 밖으로 나가면 움직이는 미로가 나오는데 그곳에는 그리버라고 불리는 괴물이 살고 있어 외부로 나갈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소년들은 러너들이 그리버를 피해 가지고 오는 정보를 통해 미로의 지도를 작성하고 있었죠.

 

 

​조금씩 기억을 되찾은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라는 것을 생각해 냅니다. 다른 소년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글레이드를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던 토마스는 러너를 구하고자 뛰어든 미로에서 그리버를 마주합니다.

 

과연 토마스와 갇힌 소년들은 글레이드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글레이드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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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그리스 신화와 구성이 너무나 유사하지 않습니까? 두 말할 것 없이 토마스는 곧 테세우스입니다. 그리고 미노타우르와 그리버는 그리스 신화와 영화에서 미로를 지키는 괴물이죠. 그렇다면 테세우스와 괴물의 운명은?

 

그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미로를 탈출할 계획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있던 글레이드 거주자들에게 토마스는 고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 같은 존재였습니다. 토마스는 글레이드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며 권력을 이동시키죠. 하지만 영화는 글레이드 내부의 역학 관계의 변화 같은 흥미로운 소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합니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던 ‘최초의 여성’ 트리사(카야 스코델라리오)의 등장도 일단은 등장으로 그치더군요. 2편부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리아드네처럼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서사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제작비가 저렴해서(순제작비 : 3,400만불)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미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기계적 장치에 의해 변경되는 이동식 미로임에도 그다지 볼거리가 없다는 게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기계장치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로에 악마적 캐릭터를 부여했더라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영화적 재미가 배가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