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5. 11. 6. 20:09

스파이 브릿지

 

 

동서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인 1957. 루돌프 아벨이라는 인물이 소련의 스파이 혐의로 미 CIA에 체포된다. 이에 보험전문 변호사이던 제임스 도노반이 변호사협회의 결정으로 아벨의 변호를 담당하게 된다.

 

여론은 빨갱이에게 재판 따위는 필요 없으며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도노반은 적극적으로 아벨을 변호한 결과 사형을 면하게 한다. 이는 그 자신과 가족들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결과였다.

 

 

하지만 아벨이 사형을 면한 이유는 언젠가 소련에서 미국인이 똑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징역을 살 때 아벨을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지 않느냐는 도노반의 전략이 주효한 결과였다.

 

 

그런데 1962년 소련 상공을 정찰하던 미국 첩보기가 격추되고 조종사가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는 일이 벌어진다.

 

역시 소련에서 재판을 받고 징역형에 처해진 미국인 조종사 게리 파워즈. 재판이 끝나고 소련은 은근히 스파이를 맞교환하자는 제츠쳐를 미국 측에 보낸다. 이에 미국에서는 아벨을 변호했던 도노반을 민간인 신분으로 대소련 협상창구로 활용하기로 하고 냉전의 중심지이던 동독으로 보내는데..

 

 

1950년대 미국은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고 있을 시기다. 2차 대전 이후 공산주의와 마주한 미국 사회는 새로운 적에 대해서 극도로 경계했다. 이러한 미국사회의 불안이 표출된 게 매카시즘이라는 반공주의였다.

 

1950년 공화당의 상원의원이던 조셉 매카시는 미 국무부를 비롯한 미국 도처에 사회주의자들이 우글거린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매카시의 발언은 사실 여부를 더나 미국 사회 전체를 큰 충격에 빠트렸으며 곧 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급격히 보수화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스파이 브릿지’(Bridge of Spies)는 이처럼 미국 사회를 광폭한 반공주의 물결이 덮치고 있을 때 소련 스파이를 변호한 한 용기 있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inspired of true story) 픽션이다.

 

도노반은 형사 전문이 아닌 보험 전문 변호사였음에도 본인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는(반면 금전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스파이 사건을 맡게 된다.(우리 영화 변호인에서 세무 전문 변호사 송우석이 뜻하지 않게 시국 사건을 담당한 것과 비슷하다)

 

 

법률이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벨이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아벨의 변호인 도노반은 여론의 질타를 맞는다. 미국에서 가장 싫어하는 인물 1위는 아벨, 2위는 도노반, 3위는 도노반의 가족이라 할 정도로 여론이 불리하고 외압과 회유는 물론 재판과정 역시 공정치 않았지만 도노반은 기지를 발휘, 아벨에게 극형을 면하게 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미국 정부는 도노반에게 아벨과 소련에 붙잡혀 있는 미국 조종사의 교환을 성사시키라고 한다. 그것도 정부의 대리인이 아니라 민간인 신분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지만 도노반은 신변 보장도 없이 사지가 될 수도 있는 땅 동독으로 간다. 그곳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미국 대학생이 억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도노반은 아예 2 : 1의 교환 협상을 시작한다.

 

 

스필버그의 스파이 브릿지는 전기영화에 가까운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감동은 상당 부분 제임스 도노반이라는 캐릭터에서 나온다. 영화 전체로 봐서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으로서는 평작 수준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그의 연출력을 감안할 때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던 좀 더 자극적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또 다른 전기영화 링컨’(2012)에서 그랬던 것처럼 조미료를 가미하기보다 식재료 자체의 맛과 향을 내려 노력했다.

 

 

스필버그의 오랜 동반자 톰 행크스는 뚝심 있는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 역을 맡아 영화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하지만 눈여겨봐야 할 배우는 루돌프 아벨 역할의 마크 라이런스다. 전혀 스파이답지 않은 진짜 스파이를 연기한 그는 사형 선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외유내강을 연기한다. 아벨은 도노반이 당신은 죽는 게 두렵지 않소?(Aren't you worried?)라고 물을 때마다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Would it help?)라고 되묻는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달관의 경지 그 자체다.

 

 

PS : 제목의 브릿지는 동서독을 연결하는 글리니케 다리를 뜻한다. 이 다리 위 한 가운데서 미소 양국은 스파이를 맞교환했다.

 

201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