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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 신을 시기한 남자
영화가 시작되면 한 노인이 모차르트를 부르며 자신이 그를 죽였다고 울부짖는다. 노인의 이름은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 빈의 궁정악사장을 지낸 당대의 작곡가다.
이 유명한 작곡가가 어떤 이유로 이름 없는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죽였다며 괴로워하는 것일까?
30년 만에 재개봉된 영화 ‘아마데우스’(1984, 감독 밀로스 포먼)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영국의 극작가 피터 셰퍼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내용은 알려졌다시피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한 살리에리가 그를 파멸에 이르게 하고 (사실상) 살해했다는 것이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살해했다는 소문은 모차르트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빈 음악계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푸쉬킨은 소문을 바탕으로 1830년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라는 희곡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마데우스’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수준의 이야기를 말하는 작품은 아니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든 그렇지 않든 이 영화의 감동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의 전기영화가 아니며 추리물은 더더욱 아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가 상당히 나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로 두 사람은 여섯 살 차이에 불과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활동하던 시기 모차르트의 작곡료는 살리에리의 절반 수준이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모차르트가 빈에 데뷔했을 때 살리에리는 이미 궁정악사장이었다. 하지만 살리에리는 찰스부르크 출신의 촌뜨기가 지닌 비범한 재능을 알아본다.
신은 어찌하여 저런 경박한 인간(영화에서 모차르트는 매우 경박한 인물로 묘사된다)을 사랑하시어 그토록 뛰어난 재능을 주시고 나에겐 겨우 그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재질만을 주셨는가?
마치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의 신출귀몰한 재능을 부러워한 나머지 오나라의 책사 주유가 하늘은 어찌하여 주유를 내시고 또 제갈공명을 내셨냐며 자조하는 대목을 연상케 하는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리의 감정은 단순한 시기심이라기 보다는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이었으리라.
따라서 살리에리의 상대는 모차르트가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경배했던 신이었다.
소설가 최인호는 생전에 ‘글도 어찌 내 것이랴, 작품 역시 내 것이랴’라며 자신은 받아쓰는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가는 그저 신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대필자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살리에리는 신이 선택한 모차르트를 파멸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 신에게 승리를 거두고자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예술이 예술 만으로의 기능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만약 예술적 가치로 순서를 매긴다면 영화의 순위는 흥행순이 아닐 것이다. 신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세상에서는 그들이 만든 제도에 의해 평가되는 부조리(不條理).
살리에리는 궁정악사장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모차르트 아니 신을 파멸시키기로 한다. 살리에리의 간계로 레슨이 끊기고 생활이 궁핍해진(그 때나 지금이나 음악가의 주 수입원은 ‘레슨’이다) 모차르트는 왕과 귀족들이 아닌 서민을 상대로 한 희가극을 썼지만 신의 솜씨는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살리에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인간의 세상에서 신을 축출하는 것이었다. 만약 신이 인간을 위해 작곡한 레퀴엠을 신의 장례식 때 쓸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반전은 없을 것이었다.
영화나 원작 희곡에서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데우스’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대립을 통해 예술에 있어 예(藝)가 앞서는지 도(道)가 우선인지를 논한 이문열의 ‘금시조’가 읽혀지기도 한다. 스승인 석담은 제자인 고죽에게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며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먼저 사람이 될 것을 말한다. 사람이 되지 않으면 그가 가진 재주는 예능에 머물고 예도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아마데우스’에서는 살리에리가 사람됨이 경박한 모차르트에게서 예능(藝能) 즉 ‘딴따라’를 발견했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가운데 이름이기도 한 아마데우스(Amadeus)는 ‘신이 사랑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천재에 걸 맞는 기가 막힌 이름이다. 하지만 창작을 했다기보다 신이 불러주는 선율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차르트의 경우 신의 현신(現身)이라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살리에리는 신을 시기한 남자인 것이다.
밀로스 포먼의 ‘아마데우스’는 1985년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F. 머레이 아브라함) 등 무려 8개 부문을 수상했다.
20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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