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6. 2. 19. 10:16

프로스트 VS 닉슨

 

닉슨(Richard M. Nixon, 1913~1994)은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논란 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죠. 중국과의 교류와 소련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재임시의 탁월한 외교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워터게이트라는 미 정치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인해 대통령직을 스스로 사임한 유일한 대통령이 바로 닉슨입니다.

 

197489, 워터게이트 사건(197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의 선거사무실이 입주해 있던 워터게이트 빌딩에 괴한들이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 닉슨은 자신과의 관련성을 부인했지만 은폐를 기도했음이 밝혀지고 결국 국회의 탄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대통령직을 사임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에도 불구하고 1972년 선거에서 닉슨은 민주당 후보였던 맥거번에게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으로 인해 대통령으로서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합니다. 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어떠한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하지 않았죠.

 

사실 닉슨은 어느 공화당 출신 대통령보다 탁월한 지적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랬기에 대통령직을 사임한 후에도 도합 14년 간이나 정부통령직을 수행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 활동과 원고 집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우 도전적인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던 닉슨(프랭크 란젤라)에게 강연 활동은 심심한 소일거리에 불과했습니다. 마치 196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서 민주당의 케네디와 맞장토론을 벌였을 때처럼 그는 보다 투쟁적인 일거리를 원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한편 한물간 연예 전문 MC 데이빗 프로스트(마이클 쉰)는 닉슨과의 인터뷰를 따내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웁니다. 닉슨을 발가벗겨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계획이었죠.

 

그러나 그의 계획을 받아들여 선뜻 투자에 나서는 방송국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결국 프로스트는 자비를 들여 닉슨과의 인터뷰를 따내죠.

 

 

닉슨은 대단히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다고 하는데요, 영화에서는 프로스트가 닉슨의 보좌관을 수령인으로 하는 수표를 끊으려 하자 자신을 수령인으로 하는 수표를 끊으라고 지시하는 닉슨의 단면을 그림으로써 그의 성격에 대한 감독의 평가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인터뷰를 통해 닉슨이 정계복귀를 시도한 것처럼 그리고 있으나 대통력직을 스스로 사임한 인물이 TV인터뷰를 통해 정계복귀를 시도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닉슨으로서는 1952년 부통령 후보 당시 정치자금 유용혐의를 받자 TV에 출연하여 용기있게 해명함으로써 극적으로 여론을 반전시켰을 때처럼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자신을 해명할 기회를 얻고 싶었겠죠.

 

실제로 닉슨은 후임자인 포드로부터 사면을 받음으로써 전직 대통령으로서 법정에 서는 치욕을 면하게 되는데요, 영화 속의 닉슨은 오히려 그러지 못한 일을 아쉬워합니다. 닉슨의 투쟁적인 면모를 그리고 있는 거죠.

 

 

이렇듯 한물간 MC와 전직 대통령의 이해가 맞아 떨어짐으로써 1977년 드디어 '대결'이 성사됩니다. 프로스트로서는 닉슨으로부터 화끈한 고백을 받아냄으로써 대박을 터뜨리려 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정치인인 닉슨은 프로스트를 가볍게 제압하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려 하죠.

 

인터뷰는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이 싱겁게 진행됩니다. 닉슨은 질문의 핵심을 비켜가면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업적을 홍보합니다. 닉슨의 쉴 새 없는 자화자찬에 당황한 제작진은 일단 호흡을 끊어보지만 라운드가 바뀌어도 프로스트는 도무지 닉슨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제작진들 조차 닉슨이 다음 선거에 나오면 그를 찍겠다고 말할 정도로 닉슨의 말솜씨는 뛰어 납니다.

 

4회로 진행된 인터뷰의 마지막 날. 그동안 닉슨으로부터 일방적인 공격을 받았던 프로스트는 드디어 닉슨의 약점을 파고드는데 성공하는데.. 과연 닉슨으로부터 사과를 얻어 낼 수 있을까요?

 

 

감독(론 하워드)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토론을 소재로 한 이 작품(프로스트 VS 닉슨)을 마치 운동경기를 다룬 영화처럼 박진감 있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로스트의 송곳 같은 질문을 피해 쉴 새 없이 떠벌이는 닉슨의 모습은 권투 경기에서 도전자의 잽을 피해 주먹세례를 퍼붓는 강력한 챔피언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공격 타이밍을 끊고 구수회의를 벌이는 양 진영의 모습은 바로 타임을 걸어 작전을 지시하는 농구나 배구 경기의 코칭 스태프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슨의 인격이나 닉슨 시대의 세계사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 영화에 몰입 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단히 흥미로운 인간임에 틀림 없지만 닉슨은 거의 반세기 전에 활동하던 인물(닉슨은 1950년대에 이미 미국 부통령을 지냈다)이며, 워터게이트는 미국의 정치 사건이기 때문이죠.

 

프랭크 란젤라의 연기는 매우 뛰어난 편입니다. 저 역시 지면을 통해서만 닉슨을 접했기 때문에 프랭크 란젤라가 닉슨의 행동이나 억양 등을 얼마나 잘 모사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자신 안에 닉슨을 가지고 있더군요.

 

 

론 하워드의 연출 역량은 토론 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제시했습니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제81회(2009년) 아카데미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비롯한 다섯 개 부문에 노미네이션 되었지만 아쉽게도 단 한 부문에서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