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6. 2. 23. 10:01

페이스 메이커 / 이 세상의 조연들을 위하여!

 

 

주만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달리는 마라토너다. 다른 선수의 페이스 조절을 위해 길을 달리는 그는 집에서는 단 하나의 혈육인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지난 세월을 뛰어 왔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페이스 메이커로도 기용되지 않는 그에게 어느 날 국가대표 마라톤 감독인 박성일이 찾아온다.

 

런던 올림픽의 유망한 금메달 후보인 민윤기의 페이스 메이커로 뛰어 달라는 것. 비록 조연이긴 하지만 올림픽 무대 출전의 꿈을 이루고 사채를 갚기 위해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맨 주만호. 하지만 자신의 다리가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사실주의 연기자 김명민이 마라토너로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페이스 메이커'(감독 : 김달중, 2012)는 평생 남을 위해 달린 무명의 마라토너가 생의 마지막 무대가 될지 모를 레이스에서 자신을 위해 달리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다소 어눌한 주만호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의치를 끼고 열연한 김명민은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줬다. 그런데 김명민이 주만호 속에 살아있는 게 아니라 극중 인물인 주만호가 김명민의 이름에 기댄 듯한 느낌이다. 주만호라는 캐릭터가 스크린을 지배할 만큼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김명민이 의치를 하고 연기해야 할 만큼 좀 모자란 듯한 인물이 아니라 그냥 김명민을 내세웠더라면 어땠을까?

 

 

영화는 주만호라는 만년 조연 인생을 그리고 있지만 이 영화의 조연은 장대높이뛰기 선수 유지원을 연기한 고아라이다. 고아라는 도도한 스타일의 유지원 역을 제대로 소화했지만 육상선수의 몸은 갖추지 못했다. 마라토너 역할을 위해 실제로 마라톤 훈련을 받으며 마라토너의 근육을 만든 김명민과는 대조적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현지 로케로 진행된 미리 보는 런던 올림픽(2012) 마라톤 경기. 실제로 경기가 벌어질 마라톤 코스에서 촬영했다는 이 장면은 실제 대회 중계 방송을 방불케 할 만큼 생동감이 넘친다.

 

 

사실 마라톤은 달리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에게 지루한 경기이다. 소재가 그런 만큼 길바닥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더라면 영화는 아주 단조로웠을 것이다.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감독은 메인 스트림 외에 여러 갈래의 물줄기를 냈다. 하지만 물줄기들은 합수(合水)하지 못하고 가다가 끊어진 느낌이다.

 

조역으로서 유지원의 비중은 적지 않지만 역할은 애매모호하다. 유지원이 주만호의 풀코스 도전이라는 메인 스트림에 보태는 동력은 너무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메인 스트림은 힘차게 흘러 목적지 부근에 이르러는 관객들의 눈가를 적시게 할 만큼의 폭발력을 갖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폭발의 강도가 너무 세 그만 여운이 남을 자리마저 날려버렸다. 폭약의 강약을 조절하는 감독의 노련함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