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6. 2. 24. 15:53

사울의 아들 /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이 가장 잘 하는 일은 지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 블루 하이웨이 생각 -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 곳의 시체소각장에서 일하던 사울(게좌 뢰리히)은 어느 날 목숨이 채 끊어지지 않은 소년을 발견한다.

 

이상하게 여긴 의사가 소년을 질식시키고 해부하려 하자 사울이 만류한다.

 

제 아들입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의사에게 시신을 내어달라고 하는 사울.

 

어차피 죽었는데..’

 

하지만 같은 유대인 포로 신분이었던 부검의는 곧 사울에게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고 하고 사울은 시신을 빼내 장례식을 치러주려 한다.

 

 

68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으며, 88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의 유력한 수상 후보작인 라즐로 네메스 감독의 사울의 아들’(Saul Fia, Son of Saul)은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인간의 만행을 고발한 작품이다.

 

잊지 말아야 할 비극이자 악몽이지만 이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고 해도 큰 자극을 주기는 어렵다. 그동안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관련 작품이 쏟아진 결과다.

 

 

그런데 헝가리 출신의 신인 감독이 만든 사울의 아들은 고발의 방법을 달리한다.

 

일단 화면 비율이 인상적이다. ‘사울의 아들은 일반적인 스크린 비율인 16:9 화면이 아니라 4:3으로 제작되었다. 화면의 폭이 좁기 때문에 좌우측에 여백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화면 구성은 몰입도를 높여주지만 갑갑한 느낌도 함께 준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수용소에 갇힌 것처럼 고통스럽다.

 

아울러 카메라가 계속해서 (아들의 시신을 숨기고 장례식 준비를 하는) 불안한 사울을 쫓음으로써 긴장감을 높인다.

 

하지만 사울에 대한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주변부의 아웃 포커스는 피로감을 일으킨다. 이 또한 의도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영화는 시각보다는 청각적 자극을 극대화함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돕는다. 예를 들어 가스실의 공포를 보여주는 대신 그 속에 갇힌 유대인들이 내는 절규와 신음을 들려주는 식이다.

 

영화의 내용과 롱 테이크가 많은 흐름도 꽤 답답하다. 도대체 불가능할 것 같은 수용소 안에서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사울을 보면서 언제부턴가 관객들은 사울의 행위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진다. 그러고는 앞서 유대인 의사가 던졌던 말을 되새긴다.

 

어차피 죽었는데

 

 

도대체 사울은 왜 그토록 죽은 아들의 장례식에 집착하는 것일까? 게다가 당신에게 아들이 있었냐는 사울 주변 인물들의 대사는 사울에 대한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에 대해 감독은 유대인의 시신을 토막이라 부르며 가스실에서 처형하고 소각로가 부족하면 아무렇게나 구덩이에 던져버리는 나치의 만행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사울의 아들은 말하자면 인간에 대한 예의에 관한 영화다. 하긴 산 사람에 대한 예의도 없는 세상에서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 애쓰는 사울을 선뜻 이해할 수 있겠는가?

 

칸과 아카데미가 주목한 사울의 아들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이 사회에 대한 강력한 경종이다.

 

2016.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