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6. 2. 25. 10:25

주먹왕 랄프 / 추억과 꿈이 있는 애니메이션

 

이건 뭐 토이 스토리의 오락실 버전입니다.

 

'다고쳐 팰릭스'라는 8비트 오락기에서 지난 30년 간 악당 짓을 해온 랄프는 자신의 역할에 회의를 느낍니다.

 

사실상 게임의 주인공이지만 언제나 박수를 받는 건 팰릭스라는 수리공이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동료 캐릭터들이 던지는 모멸 뿐이었죠.

 

게임이 탄생한지 30년을 기념하는 파티에 초대 받지도 못한 랄프는 영웅이 되어 돌아오겠다며 그만 프로그램을 이탈해 버립니다.

 

 같은 게임 속의 동료 캐릭터들에게 왕따 신세인 랄프는 영웅이 되어서 돌아오겠다며 프로그램을 이탈한다

게임 센터(알고 보면 각종 오락기의 코드가 꽂힌 멀티탭입니다)에서 다른 코드를 타고 1인용 슈팅 게임인 '히어로즈 듀디'로 들어간 랄프는 그곳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오는 길에 잘 못해서 레이싱 게임인 '슈거 러쉬'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슈거 러쉬'에서 만난 꼬마 숙녀 바넬로피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랄프. 메달을 돌려 달라는 랄프에게 바넬로피는 레이싱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에 돌려 주겠다고 합니다. 레이싱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금화가 필요했는데 바넬로피가 그만 랄프의 메달을 금화 대신 사용해 버린 것이죠.

 

그럼 바넬로피의 운전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놀랍게도 그녀는 운전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캐릭터였습니다. 레이싱 게임에서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캐릭터가 느껴야 했을 뻘줌함이 느껴지시나요?

 

 슈커 러쉬는 알록달록 캔디 컬러의 세계다. 슈거 러쉬의 캐릭터 바넬로피

 

한편 주인공인 랄프의 이탈로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해 진 '다고쳐 팰릭스'는 휴업에 들어갑니다. 캐릭터들이 자진 휴업에 들어간 게 아니라 수리에 들어 간 거죠.

 

사실 30년 된 화질 구린 8비트 게임이 무슨 인기가 있겠습니까? 작동 안되면 그날로 폐기처분이라고 봐야죠.

 

, 이제 이 애니메이션의 종착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랄프는 같은 천덕꾸러기 신세의 바넬로피를 도와 금메달을 되찾고 '다고쳐 팰릭스'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8비트 게임의 화질을 잘 표현한 포스터

 

지금은 게임의 유비쿼터스 시대이지만 '다고쳐 팰릭스'가 탄생한 30년 전 만해도 오락실에 가서야 게임을 즐길 수가 있었죠. 그 때는 전자오락이라고 했었습니다. 8비트 컴퓨터에 인베이더, 겔러그 등 우주전쟁을 소재로 한 조잡한 게임 프로그램을 깔고 하교하는 학생들을 붙잡았죠.

 

오락실이 오래 전에 PC방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게임 프로그램이 오락기에서 PC로 스마트폰으로 옮긴 지금 8비트 게임은 동시상영관처럼 추억이 되었죠.

 

'주먹왕 랄프'는 어른들은 추억에 잠기고 아이들은 꿈을 꿀 수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입니다.

 

오락실의 문이 닫히고 전원이 꺼진 후 시작되는 게임 캐릭터들만의 세계, 상상만 해도 즐겁고 짜릿하지 않습니까?

 

 본문에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히어로즈 듀디'의 여성전사 칼훈 병장도 중요한 배역이다

 

결국 '주먹왕 랄프'는 토이 스토리의 오락실 버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살아 있는 캐릭터 이야기의 원형으로 저는 안데르센의 '장난감 병정'을 꼽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은 안데르센의 거대한 세계로부터 아직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셈입니다.

 

제가 '토이 스토리3'의 리뷰를 작성하며 토이 스토리도 언젠가 또 다른 이야기의 원형적 소재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주먹왕 랄프'가 토이 스토리를 모델로 해서 탄생했다면 그 '언젠가'가 생각보다 빨리 온 셈인가요?

 

'주먹왕 랄프'는 재미 뿐 아니라 훈훈한 감동과 교훈도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랄프는 비록 악역이지만 자신의 역할이 어느 캐릭터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죠. 세상에 필요 없는 역할은 없다는 말인가요?

 

저는 남자라서 그런지 슈팅 게임인 '히어로즈 듀디'에서의 분량을 더 늘이고 캔디와 초컬릿으로 집을 짓고 탄산음료가 솟아나는 '슈거 러쉬' 분량을 줄이면 어땠을까 합니다만 그건 개인 취향이겠죠.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꿈을 주는 '주먹왕 랄프'가족 영화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