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오브 미 / 어떻게 다시 사랑할 수 있겠어요?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니콜라스 스파크스(Nicholas Sparks)노트북’(The Notebook, 2004)의 원작자로 알려졌지만 영화팬들에게는 본업인 소설가보다 영화인으로 더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까지 17편의 로맨스 소설을 발표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10편이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내년에도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또 한 편의 영화( 더 초이스)가 개봉 예정되어 있습니다.

 

 

베스트 오브 미’(The Best of Me, 감독 마이클 호프만)는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원작 가운데 아홉 번째로 영화화된 작품입니다.

 

루이지애나 주의 남부 뉴올리언즈 근처의 작은 마을. 이웃 사이인 도슨(루크 브레이시)과 아만다(라이아나 리버라토)는 첫사랑에 빠집니다.

 

이웃이라고는 하지만 넥스트 도어에 사는 건 아닙니다. 자동차로 오가는 정도. 하여튼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부잣집 딸 아만다가 가정 형편상 학교를 때려치운 도슨에게 적극적인 데시를 해서 둘의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벌써 뭔가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러브 스토리란 다 이래야 되는 건가요?

 

 

당연히 아만다의 집에서는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정작 두 사람을 갈라놓은 건 아만다의 집안이 아니라 도슨의 아버지 타미(숀 브리저스)였습니다.

 

아들이 부잣집 딸과 사귀다가 상처 받을까봐서?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독한 폭력배인 도슨의 아버지는 아들을 남자답게 키운다며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곤 했는데 그 폭력의 수준이란 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더군요.

 

결국 타미의 폭력이 발단이 되어 도슨과 아만다는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자 관계지만 암튼 도슨은 아비 잘 못 만난 탓에 학교도 못 다니고 여친도 잃은 거죠.

 

 

그로부터 이십 여 년의 세월이 흘러..

 

해상 굴착선에서 기사로 일하는 도슨(제임스 마스던)과 가정주부로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아만다(미셀 모나한)는 친하게 지내던 턱(제랄드 맥라니)이라는 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고향 마을로 향합니다.

 

다 꺼진 줄 알았습니다만 이십 여 년 만에 첫사랑을 보는 순간 두 중년의 마음속에는 십 대 시절 못지않은 불길이 솟아오릅니다.

 

제가 우리 영화 한 여름의 판타지아를 소개하면서 독립된 시공간에서 따로 남자친구가 있는 혜정이 유스케의 키스를 거부하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함께 자란 고향 마을이 결코 낯선 곳은 아니지만 일상을 벗어난 두 사람에게는 충분히 일탈의 기회를 제공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다시 사랑에 빠지라는 말이죠? 한 순간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You want me to fall back in love with you? How do I do that if I haven't ever stopped?)

 

, 정말 오글거리는군요. 이십 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도슨이 데시를 하자 아만다가 한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남긴 빈 집에서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두 사람의 관계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일단은 로맨스 소설의 대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기술을 믿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정작 니콜라스 스파크스 자신은 최근 25년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하는군요. 이걸 두고 중이 제 머리 깍지 못한다고 해석을 해야 할지 아니면 스스로 다른 로맨스를 실천하기 위함인지 모르겠군요. 뭐 워낙 유명인사다 보니 또 외신을 타고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겠어요?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대단히 통속적입니다. 그러다보니 부자연스럽죠. 이야기가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기 보다는 이야기를 어떤 특정한 지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길을 냈다고 하는 편이 옳죠.

 

자세히 쓰지는 못했습니다만 베스트 오브 미역시 무리한 물길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영화를 보는 까닭은 어쩌면 그가 제시한 물길이 로망이어서가 아닐까요?

 

 

기술 편의상 제가 시간의 흐름으로 영화를 재편집해서 소개했습니다만 베스트 오브 미의 경우 젊은 도슨-아만다 커플의 이야기와 중년의 도슨-아만다 커플의 이야기가 마구 교차되어서 나옵니다. 그래도 배우들의 생김이 많이 달라서 헷갈리지는 않더군요. ㅎㅎ

 

그런데 제가 보기에 니콜라스 스파크스가 방점을 찍고 있는 건 젊은 도슨-아만다 커플이 아니라 중년의 커플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십대의 풋사랑놀이로 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적어도 결혼한지 십년은 지난 중년들이 난 한 번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면서과거를 회상하며 보기 딱 좋은 영화라는..

 

과거가 없는 사람들은? 그래서 로망이라니까요. ㅎㅎ

 

 

베스트 오브 미는 대다수의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작품들과는 달리 무대가 노스 캐롤라이나가 아닌 루이지애나입니다. 그래서 풍광이 많이 다르더군요. 멕시코만을 끼고 있는 루이지애나가 어떤 곳인지 아시죠? 덮고 습하고 태풍도 불어오고..

 

그래도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우중 키스신이라든가 호수에서의 데이트는 장소가 바뀌어도 똑 같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루이지애나의 풍경이 노스 캐롤라이나보다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원작 영화들은 대개 배경이 예쁜 편인데 베스트 오브 미의 배경은 그 중 베스트인 것 같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처럼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영화들도 거기서 거긴데 뭐 다시 볼 게 있느냐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 같은데 그래도 전 이 두 분의 작품이 늘 기다려집니다. 다음 달에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이 개봉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마 또 추석 시즌이 되지 않을까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여기서 말할 필요가 없고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작품들은 뭐랄까요? 미국의 이면이라고 할까요? 딴 세상 같은 한적한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화적 설정이라고 할지라도.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경우에는 근래 들어서는 직접 제작에 참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당분간은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달달한 영화들을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 : 젊은 도슨-아만다와 중년의 도슨-아만다의 싱크로율은 우리 영화 건축학 개론의 승민-서연 커플이나 세시봉의 근태-자영 커플의 과거와 현재 만큼이나 떨어지더군요.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