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와 신성모독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 1988)'에서 신성모독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영화는 예수를 '신의 아들'이 아닌 '사람의 아들'로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예수의 위대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종교단체 등의 반발로 제작사가 바뀌는 등 난관 끝에 겨우 완성되었으며 국내에서도 한 차례 상영이 무산된 끝에 재작년에서야 개봉됐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의식을 잃어가며 환몽을 꾼다. 환몽 속에서 예수는 여인을 만나 가정을 꾸리며 평범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환몽 속에서) 임종을 맞는 순간 그를 찾아 온 제자들의 질책을 듣고 다시 십자가에 매달린 자신의 모습을 본다. 한 인간의 삶을 거부하고 인류를 구원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예수는 고통과 유혹을 느끼는 인간이다. 하지만 고통과 유혹을 뿌리침으로써 예수는 부활한 것이다.

 

예수가 되었든 모하메드가 되었든 성인을 소재로 한 것 자체가 신성모독일 수는 없다.

 

신성모독에 대해 가장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이슬람 국가들이다. 재작년 나이지리아에서 미스 월드 대회를 준비중일 때 현지의 한 기자가 모하메드가 살아 있으면 대회 참가자 중에 한 미녀를 골라 결혼했을 것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물론 기자는 참가자들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표현하려 악의 없이 쓴 것일 수도 있지만 기사를 보고 대노한 지방의 회교 정부는 율법에 따라 살해하라는 칙령을 발표했다. 하지만 연방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사태는 걷잡을 수없이 확산되어 사망자 이백 여명을 포함 무려 천 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역시 이슬람 국가인 요르단에서는 작년 초 어느 기자가 모하메드가 여러 여자를 거느렸다는 기사를 작성했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위의 사례들이 신성모독인지 아닌지는 읽고 감상하는 자의 몫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 등 예술의 세계에 있어 다루지 못할 소재나 주제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특정한 소재 혹은 주제의 작품이 예술인지 아닌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누드도 그렇다. 누드는 오래 전부터 예술의 소재였다. 누드가 예술의 소재가 될 때 그것은 표현수단으로서 도구일 뿐이다.

 

위안부를 컨셉으로 한 이승연 누드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가장 비극적인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더구나 대상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누드라는 '어줍잖은' 소재로 담아내려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극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점이다.

 

먼저 전자와 관련해서 만일 위안부의 고통을 무대예술이나 영화, 회화로써 표현했다면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켰겠는가. 문제는 역시 누드에 있다. 달라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누드는 금기의 소재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다음으로 기획사에서는 회견을 통해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했다고 밝혔지만 그럴 의도였다면 먼저 생존자들과 의논하고 사회적 공감을 얻어냈어야 옳다. 누가 생각해도 파장이 예상되는 일을 가지고 일단 찍고 나서 역사 운운하니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더 이상의 누드는 없다'는 카피는 대체 무슨 뜻인가?

 

물론 이번 이승연 누드는 공개된 것 대로라면 기존의 연예인 누드에 비하면 누드랄 것도 아니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옐로우 페이퍼'들의 선정적 보도에 대한 기획사의 미숙한 대응도 문제다. 누드가 아니었으면 그리고 회견 내용대로라면 처음부터 기획 의도와 컨셉을 당당히 밝히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

 

문제가 확산되자 기획자가 삭발을 하고 공개 사죄했다고 한다. 감당도 못할 일을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이었다면 이 또한 우리 사회의 부박한 단면이라고 할 것이다.

 

정리를 하자. 표현의 자유를 말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정서 그리고 생존자들의 상처를 감안할 때 '위안부 누드'라는 컨셉은 적절치 못했다.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의도였다고 해도 기획사의 태도는 신중치 못했다. 그렇지만 누드에 색을 칠하지는 말자. 누드가 무슨 죄더란 말인가.

 

200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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