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5. 9. 17. 08:00

사도 / 아버지와 아들

 

 

혹시 조선시대 임금 가운데 태종, 인조, 영조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정당한 왕위 계승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왕이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는 말이죠. 태종은 형제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인물이고 인조는 선조의 손자로 반정의 일으켜 광해군을 내쫓고 왕위에 올랐으며 영조는 숙종의 차남으로 이복형인 경종이 급서함에 따라 왕위를 계승한 인물입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정당한 왕위 계승자가 아니라는 점 외에 또 있습니다. 바로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아들과의 사이가 무척 좋지 않았다는 것이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태종은 장자인 양녕대군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세자에서 폐하고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세종)에게 왕권을 물려줬죠. 그런가하면 인조는 갈등관계이던 장남인 소현세자가 죽자 장손을 세손으로 삼지 않고 차남이던 봉림대군(효종)을 세자로 세워 왕위를 물려줍니다.

 

세 사람의 임금 가운데 가장 문제적 인물은 영조입니다. 영조는 자기 손으로 못난 아들을 죽여 버린 비정한 아버지입니다.

 

도대체 왜 비정상적으로 왕위에 오른 부왕과 정당한 왕위 계승자인 아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준익 감독의 새 사극 사도는 비정한 아버지 영조와 비운의 아들 사도세자의 부자관계를 그린 작품입니다.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영화 속으로 그리고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무려 사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일국의 군왕으로 재위했음에도 임금 영조는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정작 사대부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임금 자신이 서출이었기 때문이죠. 비록 왕가에는 적서가 없다고 하지만 쟁쟁한 문벌의 적자, 적손들인 관료들 앞에서 영조는 기죽지 않기 위해 무던 애를 썼을 것입니다.

 

사도세자는 심한 콤플렉스를 가진 영조가 마흔이 넘어 얻은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영조는 태어난 이듬해 어린아이를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아무리 살아 임금이라도 혈통을 남기지 못하면 죽어 찬밥 신세를 면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똑똑한 줄 알았던 세자가 자라나면서 자꾸만 엇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놀러나 다니고 칼싸움이나 즐기고. 처음엔 어르고 달래보았죠. 하지만 세자는 자신과는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저 놈은 무엇인데 임금의 자리를 거저 가져가려 하는가?

 

한심한 세자를 볼 때마다 영조는 자신이 등극하기까지 겪은 고초가 생각이 났습니다. 형인 경종은 남인과 소론 세력의 지지를 받은 반면 자신은 노론의 지지를 업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경종이 노론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장희빈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죠. 만약 장희빈의 아들이 왕위에 오른다면 노론은 어찌될까요?

 

노론의 안절부절에도 불구 숙종이 승하하고 그날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당연히 노론은 타격을 입고 말았죠. 죽고 귀양 가고.. 그런데 병약하던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죽자 왕위는 노론에서 밀던 연잉군(영조)으로 이어졌습니다.

 

젊은 왕이 갑자기 죽자 민심은 흉흉했습니다. 임금을 죽였을 거라는 거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월을 넘기고 가까스로 왕이 되긴 했지만 영조의 마음이 편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비천한 출생과 석연치 않은 왕위 계승은 이처럼 영조의 어두운 그림자였습니다. 모진 세월을 견딘 노회한 임금은 어지간해서는 사람을 믿지 않았습니다. 변덕도 심한 편이었죠. 까다로운 그에게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세자가 어떻게 비춰졌을까요?

 

더욱이 세자는 큰아버지인 경종의 복수를 하겠다고 떠들고 다녀 부왕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집권당인 노론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한마디로 철이 많이 부족했다고 봐야죠. 성질도 광폭하여 그에게 죽임을 당한 내시나 무수리가 무려 백 여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을 보면 사람의 목을 베어서 들고 다니며 보여줬다고 합니다.(영화에도 살짝 나오더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인이 쓴 기록이니 사실일 것입니다.

 

영조가 비정한 아버지인 건 맞지만 사도세자의 기행을 보면 만약 왕위에 올랐을 경우 연산군보다 더한 짓을 저지르면 저질렀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조선왕조가 보다 일찍 붕괴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영화만 보면 아버지 영조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지나친 기대감이 사도세자를 정신병적 수준에 이르게 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너무 잘 알려진 역사이니 우리는 그런가 보다 하지만 역사를 모르는 외국인이 본다면 부자간의 갈등을 촉발한 원인을 어디서 찾을까요? 세자가 하라는 공부 안 해서?

 

영화에도 세자의 광기가 그려집니다만 그건 이미 부자간의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른 다음의 일이죠.

 

 

이준익 감독은 기본적으로 연출을 대단히 '이지 고잉'하는 스타일입니다.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대표작 왕의 남자를 비롯한 몇 편의 사극을 연출하긴 했지만 사실 시대극에 불과한 작품들이고 라디오 스타즐거운 인생등의 현대물은 개연성이 너무 부족하죠. 보여주고 싶은 걸 보여주기 위해 내러티브나 디테일은 과감히 생략하는 연출 스타일입니다.

 

앞선 작품들에 비해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직조되긴 했지만 사도역시 모르고 보면 내러티브가 결코 친절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래도 팩션이 활개 치는 시대에 이 만한 작품이라면 정통 사극이라 봐줘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역사 속으로 들어가서 저는 비정상적으로 왕위를 계승한 아버지는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아들을 보며 자기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태종의 경우, 왕위라는 게 태어난 순서 등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면 자신은 뭐죠? 괴물이죠. 그래서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아들 앞에 끊임없이 허들을 놓았을 걸로 짐작합니다. 아마 양녕대군이 아니라 어지간한 인물이라도 결국은 낙마했을 것이라는.

 

 

영화 사도는 정통 사극이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뒷맛이 남는 작품입니다.

 

사도세자 역할의 유아인은 베테랑에 이어 시대는 달라도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변변치 못한 2(3)의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베테랑에 이어 거듭 천만을 찍을 수 있을까요?

 

 

영조 역할의 송강호는 관상의 아쉬움을 달래고 (사극 출연으로) 처음으로 천만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치적인 색을 빼고 부자간의 관계에 집중해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풀어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이 점이 영화의 깊이를 얕게 했을 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없어 천만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혜경궁 홍씨 역의 문근영은 도대체 존재감이 없어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어쩌면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을지도 모르는 아내의 롤이지만 연기를 그저 말로 하더군요.

 

 

PS 1 : 정치적 해석을 빼고 부자로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에만 집중한다면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조와 사도세자를 제외한 인물들은 회상에서 등장하며 두 사람의 성장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설정하고.

 

PS 2 : 인공조명을 배제하고 시대의 빛깔을 내려 자연광을 사용한 의도는 알겠는데 화면이 좀 어둠 컴컴하더군요. 전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관람했는데 배우들의 발성도 많이 씹히고요.

 

2015.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