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 토리노 / 저물어 가는 '포드'(Ford)의 시대

헐.. 도대체 요즘 세상이 왜 이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가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 줄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죠. 이스트우드는 최근 개봉한 '체인질링'(Changeling)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신작 '그랜 토리노'(Gran Torino)를 박스 오피스 정상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스트우드는 2006년 시즌에는 같은 전쟁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 본 '아버지의 깃발''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함께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정말 대단한 정력이죠.

 

젊은 신부님께서 삶과 죽음을 아시오?

 

한국전 참전용사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는 아내를 여의고 애완견 한 마리와 함께 쓸쓸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성격 '까칠한' 노인네다.

 

그를 아는 사람치고 편한 사람 없을 것 같은 박제가 되어 살아가는 이 노인네가 가장 아끼는 보물은 1972년산 '그랜 토리노'. 포드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시절 스스로 조립한 이 '클래식 카'를 무척 소중하게 여기는 그는 일본차 세일즈맨인 큰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히 아들과의 관계도 소원하기만 하다.

 

아내는 죽기 전에 마을의 젊은 신부에게 그런 남편을 회개시킬 것을 부탁하지만 월트는 스물 일곱 살의 신부에게 삶과 죽음을 아느냐고 묻는다.

 

No No No, 이럴 필요 없어욧!  

 

원죄와도 같은 상흔으로 남아있는 참전의 기억. 월트는 공로를 인정받아 무공훈장을 수여 받았지만 소년병의 죽음을 잊을 수 없다.

 

자신의 동네가 동양인들에게 점령되어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 노인네에게 어느 날 '건수' 하나가 잡힌다. 옆집의 '몽족' 청년이 그의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다 딱 걸린 것.

 

인민군 소년병에게 그랬듯 몽족 청년에게 소총을 들이대는 월트. 몽족 청년은 그가 미끄러진 사이 달아나 버린다.

 

며칠 후 자신을 '타오'라고 소개하는 그 몽족 청년이 사과하러 와서 잘못했으니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몽족 갱단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몽족 청년의 사과가 되려 부담스럽기만 한 월트. 접촉 자체가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적 차이일까? 월트의 딱딱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3대가 함께 사는 타오의 가족들은 괴팍한 백인 노인네에 대한 관심과 동정을 아끼지 않는다.

 

처음엔 우리 집 개나 잡아먹지 말라고 비아냥거리던 월트도 타오의 누나 ''를 비롯한 타오 패밀리의 계속된 호의에 마음의 문을 열며 차츰 그들과 섞이기 시작한다.

 

월트와 타오 패밀리간에 우정이 쌓여가는 가운데, 타오에 대한 몽족 갱단의 괴롭힘이 계속되자 월트는 스스로 갱단을 혼내주기로 결심한다.

 

 

오래된 차와 늙은 개 한 마리를 비롯해 주변의 모든 것이 낡은 '월트 코왈스키'. 그는 성조기를 현관 밖에 걸어 놓을 정도로 '미국적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사람입니다.

 

그가 아끼는 '그랜 토리노'는 미국자동차가 세계를 질주할 무렵 포드사에서 생산한 클래식 카죠. 미국의 길거리를 일본차들에게 내준 지금 '그랜 토리노'는 쇠락해 가는 미국을 상징한다고 봐야겠죠.

 

 

전쟁영웅이긴 하지만 전쟁의 상흔은 영혼 깊은 곳에서 그를 괴롭힙니다. 도대체 자신과 미국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요?

 

몽족은 원래 베트남과 라오스의 고산지대에서 살던 민족으로서 베트남전에서 미국을 도운 대가로 전원 미국에 망명했다고 합니다. 처음에 월트는 이들을 야만인으로 여기며 자신의 이웃이 된 것을 몹시 못마땅해 하지만 어느 덧 그들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게 됩니다.

 

무엇이 그를 변모케 했을까요? 전쟁에 대한 참회?

 

스스로를 내던진 월트의 마지막 결단을 '결자해지'로 해석한다면 미국적 가치를 무시한 '아전인수'격 해석일까요? 폴란드 출신으로서 그 또한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는 월트 코왈스키에게 미국적 가치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그랜 토리노'는 명배우이자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마지막 출연작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는 연출만 맡는다고 하죠.

 

이 작품에는 이스트우드 자신 외에는 변변한 배우조차 출연하고 있지 않습니다. 스토리도 무척 심심하죠. 하지만 거장은 일상에서 건져 올린 잔잔한 감동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당초 미국 내 소수의 극장에서 개봉했다가 뒤늦게 와이드 릴리즈 하며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고 하는데요, 아마 '워낭소리'가 우리의 정서를 자극했듯 미국인들에게 잊고 있던 그들의 가치를 일깨워준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월트의 '그랜 토리노'는 최 노인의 ''인가요?

 

1972년산 그랜 토리노, 요즘의 컨셉트카 이상으로 잘 빠졌다  

 

사족 1 : 출연한 마지막 작품에서 총잡이다운 최후를 선택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사족 2 : 주제가(Gran Torino)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불렀습니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그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9. 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