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에드가 / 국가를 위한 권력은 없다

 

8명의 대통령을 보좌하며 무려 48년 동안이나 FBI국장을 지낸 인물. 바로 초대 FBI 국장으로서 종신토록 그 자리를 유지한 '존 에드가 후버'(John Edgar Hoover, 1895~1972).

 

존 에드가 후버가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음은 대통령이 일곱 번이나 바뀌는 반세기 동안 막강한 권력을 가진 FBI국장 자리를 유지했다는 것 만으로도 짐작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의 본 모습은 끝내 찾지 못한 그의 비밀 파일 만큼이나 베일에 가려져 있다. 과연 그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였는가? 그리고 공산주의에 맞서 미국을 지켜낸 영웅이었는가? 아니면 아니면 상대의 약점을 자신의 권력 유지에 악용한 모리배에 불과하였는가?

 

 

급진주의자의 발호가 미국의 위협이 되던 1924, 스물 아홉살의 청년 후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법무부 산하의 수사국 국장으로 임명된다.

 

머리가 명석했던 그는 국가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범죄 수사와 공안 정보의 수집을 위해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최고의 엘리트들로 수사국 직원을 채용했으며 의회에 예산 증액을 요청하기 위해 검거에 열을 올렸다. 때로는 검거 현장에 직접 뛰어들기도 했다. 물론 한 컷의 사진에 실리기 위해서다.

 

사찰은 장기간 그의 권력을 유지해 준 가장 큰 무기였다. 예산 증액에 반대하는 의원을 협박하기 위해 사찰을 지시한 그는 필요하면 불법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처음에는 공산주의자를 찾아내기 위해 2차 대전 중에는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감찰하고 정보를 수집한 그에게 걸려든 정치인의 스캔들은 가장 강력한 권력 기반이었다.

 

영화에서는 특히 케네디 대통령과 후버의 알력을 보여준다. 지금은 1920년대가 아니라는 직속 상관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케네디 대통령의 친동생)에게 그는 자신이 수집한 대통령의 정보 파일을 보여주며 백악관에 전해 달라고 협박한다. 바람둥이였던 케네디의 약점을 잡고 흔든 것이다.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도 후버에겐 먹잇감에 불과했다. 그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과 백악관 여기자의 동성애라는 특종 정보를 손에 쥐고 있었다.

 

실제로 법무부 수사국은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 연방수사국(FBI)으로 확대되었다. 루즈벨트가 후버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이다.

 

하지만 후버 자신도 실은 동성애자였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는 FBI의 최측근 클라이드 톨슨(아미 해머)과 동성애 관계였다.

 

 

실제로 후버는 키가 꽤 작았다고 하는데 말이 빠르고 몸집이 왜소한 그는 내면적으로는 심한 열등감을 가진 사내였다. 영화에서는 말을 정확하고 차분하게 하기 위해 연습하는 그의 모습을 잡아 준다.

 

아마도 이러한 내면적 열등감이 권력 지향적으로 표출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을 준비하는 부하 직원에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자네의 조국은 공산국가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시대착오적 인물이라고 폄하하는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에게는 나는 장관께서 태어나기 전부터 이 일을 했다고 말한다.(로버트 케네디는 1925년생이다)

 

대통령이 일곱 번이나 바뀌는 동안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국가를 위해 사찰을 하고 정보를 수집한다고 굳게 믿었겠지만 실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권모술수에 있어서라면 후버 못지 않은 닉슨 대통령은 말년의 후버에게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강력한 적이었다. 하지만 닉슨 마저도 후버를 권좌에서 밀어내지는 못했다. 오직 죽음 만이 후버를 권좌에서 일으켜 세울 수가 있었다.

 

후버 사후에 어설프게 '공작'을 벌인 닉슨 정권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역시 닉슨에게도 후버는 필요했던 것이다.

 

'J. 에드가'는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첫 번째 전기 영화다. 넬슨 만델라를 소재로 한 '인빅터스'가 있긴 하지만 특정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만델라의 전기 영화로 보기는 어렵다.

 

이스트우드는 후버를 가리켜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지만 영화에서는 후버를 입체적으로 파고 들지는 않는다. 특히 성장 과정은 완전히 배제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후버의 국가관이나 가치관이 형성되었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평생을 여비서로서 후버와 함께 한 헬렌 캔디(나오미 왓츠)와의 관계도 매끄럽게 처리되지 못했다. 법무부 수습 직원 헬렌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던 청년 후버는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거절당하고 대신 자신의 비서로 앉힌다. 사실이라면 디테일이 부족하고 허구라면 어설픈 이야기로 들린다.

 

 

20대부터 70대까지의 후버 역을 맡은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디카프리오는 이 작품으로 제69회(2012년)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에는 올랐지만 아카데미는 남우주연상 후보에 조차 끼워주지 않았다.

 

아카데미와 디카프리오의 오랜 악연은 올해 들어서야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