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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안 소설
'러시안 소설'(감독 신연식, 2013)은 눈 떠보니 유명해져 있더라는 시인 바이런의 말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당대의 작가로 추앙 받는 소설가 김기진을 존경하는 신효(강신효 분)는 그와 같은 작가가 되길 희망하면서 김기진이 젊은 작가들에게 작업실로 내어 준 '우연재' 주변을 기웃거리지만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신효의 작품은 주목 받지 못한다.
하지만 김기진의 아들 성환(경성환 분)의 극단에서 활동하는 간호사 재혜(이재혜 분) 만은 신효의 작품을 인정하고 헌신적으로 신효의 작업을 돕는다.
마침내 새로운 소설을 탈고한 날, 신효는 쓰러져 의식을 잃는다. 그러고는 27년간을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난다.
20세기의 무명작가는 길고 깊은 꿈을 꾸고 깨어나 보니 21세기 최고의 작가에 올라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으로 발표된 소설은 원작과 상당 부분이 달라져 있는 상태였다. 도대체 신효가 잠들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러시안 소설'은 27년 간이나 식물인간 상태였던 어느 작가가 깨어난 후 완전히 달라진 자신의 소설을 보고 의혹을 벗겨가는 이야기가 주가 아니다.
감독은 140분의 러닝 타임 중 90분을 신효가 소설가 지망생이던 시절의 이야기에 할애한다. 그러고나서 27년 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배우들과 영상이 싹 바뀌기 때문에 마치 서로 다른 두 작품을 이어 붙인 것 같다.
전반부의 이야기가 끝나면 출연 배우들의 이름이 올라가고 바로 후반부로 이어진다.
전반부의 영상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신효의 젊은날처럼 또는 과거의 기억처럼 채도가 낮다. 신효의 소설과 영화 속 이야기가 출연자들의 내레이션으로 뒤섞이며 전개되어 어느 부분이 소설이고 영화인지 분간하기가 꽤 어렵다.
반면 후반부의 이야기는 짧으며 속도감이 있다. 그러나 우연재 주변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누가 왜 소설을 고쳐 썼는가 라는 흥미로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임에도 전반부에 비하면 몰입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다만 중년의 신효를 연기한 김인수 등 전반부의 출연자들에 비해 안정적인 배우들의 연기는 앞과 뒤의 균형을 맞춰준다.
후반부를 이야기하기 위한 과정임에도 전반부의 90분은 상당한 가치와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치 다른 감독이 연출한 것 같은 후반부는 애초에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조차 불분명하게 한다.
신효의 주변 인물로 전반부의 주요한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여공 출신의 작가 경미(이경미 분)를 제거함으로써 이야기를 너무나 단순화해 버렸다.
그러나 평범한 50분에도 불구하고 '러시안 소설'은 요 몇 년 새 개봉한 우리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 할만하다. 그만큼 전반부의 힘이 세다.
젊은 신효를 연기한 배우 강신효도 눈여겨 볼만 하다. 주요 출연진들의 영화 속 이름은 모두 배우들의 본명을 쓰고 있다.
2013.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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