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서바이버 / 역시 람보는 없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던 20056월 마커스 러트렐 중사(마크 월버그)를 비롯한 네 명의 네이비 실 대원들이 탈레반 지도자 아마드 샤를 암살하기 위한 비밀 작전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대원들은 얼마 못가서 염소를 몰고 산길을 가던 민간인들에게 발각되고 말죠.

 

여기서 갈등이 발생합니다.

 

저들을 살려 둘 것인가? 아니면 죽일 것인가?

 

대원들의 안전과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당연히 죽이는 것이 안전했겠죠. 하지만 절대 민간인을 학살해서는 안 된다는 교전수칙이 대원들로 하여금 갈등을 유발하게 한 것이죠.

 

본부에다 보고하고 지시를 받으려 했으나 통신장비가 터지지 않아 민간인 처리 문제를 두고 대원들 간에 설전을 벌입니다.

 

‘CNN이 그냥 둘 것 같아? 미군이 아프간에서 민간인 학살했다고 떠들어 댈 걸.’

 

여기서 벌어진 일을 CNN인들 어떻게 알겠어? 저들을 놓아주면 자네 부모님이 자네의 잘린 목을 CNN을 통해 보시게 될 거야.’

 

결국 대원들은 민간인들을 놓아주기로 합니다.

 

미군들로부터 벗어난 아프간인들은 거의 날아서 산길을 내려갑니다.

 

정말 민간인 맞나?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아나는 아프간인들을 보는 대원들은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교전수칙을 지킨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1개 중대병력은 될 것 같은 탈레반이 네 명의 대원들을 에워쌉니다.

 

영화는 이 부분부터 네 명의 네이비 실 대원들이 탈레반군을 맞아 장렬히 싸우는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아무리 일당백의 네이비 실 대원들이라고 해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탈레반군을 물리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쫓기던 대원들은 결국 절벽 끝에 다다르고 살기위해 뛰어내리기로 합니다. 뛰었다고는 하지만 암석 투성이의 가파른 비탈길을 거의 굴러서 내려가더군요. 이 과정에서 암석에 온 몸이 부서질 듯 부딪히고 나무에 걸리고 다행히 죽진 않았으나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긴 대원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단숨에 절벽을 내려왔다고 해도 탈레반의 추적으로부터 벗어난 건 아닙니다. 산악지형에 익숙한 탈레반은 곧 대원들을 찾아내 총탄 세례를 퍼붓죠.

 

실전은 영화를 배신합니다. 영화 속에서 우리 편은 총알도 맞지 않고 죽지도 않아야 하건만 탈레반의 총탄은 대원들의 몸을 짓이겨 놓습니다.

 

 

두 사람의 대원이 먼저 희생되고 살아남은 마이클 머피 중위(테일러 키취)와 마커스 러틀렐 중사는 어떻게 위성전화를 통해 겨우 본부에 상황을 보고합니다.

 

미군들은 고립된 동료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더군요. 소말리아 사태를 소재로 한 블랙호크 다운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다룬 또 다른 영화 '로스트 라이언즈'에서도 그랬듯 네이비 실 대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헬기 병력을 급파하죠. 하지만 한 대의 헬기가 탈레반이 쏜 로켓포를 맞아 격추당하고 1차 구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런 가운데 탈레반은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남은 두 사람의 대원은 생과 사의 줄타기를 계속합니다. 과연 이들은 구조될 수 있을까요?

 

 

론 서바이버’(2013, 감독 피터 버그)는 미군이 탈레반 지도자 아마드 샤를 제거하기 위해 계획한 레드윙 작전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이 작전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에 미군이 벌인 최악의 작전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용감한 네 명의 네이비 실 대원들이 무려 백명(추정)이 넘는 탈레반군을 맞아 두 시간 동안 총격전을 벌였다고 하는데요, 겨우 살아남은 마커스 러트렐의 논픽션을 통해 그 전모가 세상에 밝혀졌죠. 마커스 러트렐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의 제작에 아낌없이 조언을 해줬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널리 알려진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단 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것도 영화의 제목을 통해 짐작할 수 있고 또 심하게 다친 한 명의 병사가 후송되는 걸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하기 때문에 과연 몇 명이 살고 죽었는가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궁금한 건 적지인 탈레반의 소굴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냐는 건데 이 부분은 영화를 아주 끝까지 보셔야 속 시원히 아실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수미쌍관의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민간인들을 풀어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탈레반군이 나타나자 한 대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는 좋은 일만 생겨야 하는 거 아냐?’

 

결국 민간인을 풀어주어 발생한 사태는 민간인에 의해 마커스 러트렐이 극적으로 구조됨으로써 막을 내립니다. 그런데 아프간인은 뭐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적군인 미군을 구조해 주었을까요? 그건 영화를 끝까지 보셔야 알 수 있다니까요. 아프간에는 파슈툰왈리라는 오랜 관습이 있다는 말만 드립니다.

 

 

론 서바이버는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지고 총알이 빗발처럼 날아오는 전장의 참혹한 모습을 실감나게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왜 싸우느냐구요? 자유를 수호하고 외세에 맞서 민족적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서? 잘 만든 우리 영화 고지전’(장훈 감독)을 보면 전장의 병사들에게는 싸우는 이유가 없습니다. 병사들은 싸우는 이유를 잃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이데올로기란 지도 위에서 전쟁놀이를 하는 자들에게만 존재할 뿐이죠.

 

따라서 이 영화를 보고 역시나 사람의 목이나 자르는 탈레반은 나쁘다는 식의 미국 중심적인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전쟁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론 서바이버’, 오랜만에 걸작 전쟁영화를 체험한(?) 느낌입니다. 전장에 람보는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