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 전쟁은 희극이다?

 

 

6.25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537. 비밀문서를 전달해야 하는 국방군 일등병 남복(설경구)은 인민군의 습격을 받고 문서를 분실하고 만다.

 

한편 인민군 전차병 영광(여진구)은 미군 전폭기의 폭격으로 동료들을 잃고 헤매다 남복이 잃어버린 비밀문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남복과 마주치게 되고 두 사람은 비밀문서 전달과 탱크 사수라는 각자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1 : 1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서부전선’(감독 천성일)은 전쟁 코미디다. 휴전을 며칠 앞두고 만난 남북한의 졸병들은 체제를 대변한다. 그리고 치고받으면서 남북한의 대리전을 벌인다. 하지만 승부를 내지 못하고 어느덧 서로가 서로를 죽일 필요까지는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농사를 짓다가 징집당한 남복과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인민군에 입대한 남복과 영광은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이해하고 나아가 생존을 위한 동반자가 된다.

 

 

영화 서부전선은 선우휘의 단편소설 단독강화’(1959)에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는 작품이다. 치열한 교전 끝에 낙오한 남북한의 병사는 하룻밤을 헤치지 않고 보낸 후 다음 날 각자의 길을 떠나지만 하필 중공군의 습격을 받는다.

 

단독강화서부전선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소설과 영화가 탄생한 시점일 것이다. 반공이 국시이던 서슬 퍼렇던 시절에 단독강화는 남북한 병사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 남북한의 동질성 회복을 그렸다.

 

 

천지창조 이래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고 오십 여 년 전에 나온 이야기라고 다시 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문제는 이야기의 진화다.

 

서부전선은 남북한 졸병들의 만남을 통해 전쟁을 비판하고 있지만 울림을 주지 못한다. 전쟁은 나쁜 짓이며 의미 없다는 건 서부전선 이상 없다’(1930) 이래 이미 수많은 전쟁영화들이 부른 노래다. 귀가 따갑도록 들은 노래를 다시 부르려 코믹송으로 편곡했지만 그저 흘러간 명곡처럼 들린다면 곡의 문제가 아니라 제작의 문제다.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거의 두 배우만의 작은 전쟁으로 진행된다. 설경구의 연기는 낯익으며 여진구의 연기는 설익었다. 낯익고 설익은 연기로 거의 두 시간을 때운다는 건 연출하는 사람이나 연기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전쟁의 탈을 쓴 코미디 장르지만 극중 전쟁 장면은 제법 실감난다. 아울러 실제 6.25때 북한군에서 사용했다는 T-3485 탱크를 움직일 수 있게 직접 제작함으로써 사실감을 높이려 공을 들였다.

 

2015.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