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폭력탐구 2015. 8. 13. 11:00

구타유발자들

 

 

구타를 유발한다는 것은 맞을 짓을 한다는 것과 같다. 그런데 맞을 사람이 있다는 건 때릴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성악가 영선(이병준)은 임시 번호판을 단 새로 뽑은 벤츠에 뮤지컬 오디션을 앞두고 있는 제자 인정(차예련)을 태우고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간다.

 

오디션을 앞두고 있는 여제자와 교수의 드라이브.. 영선의 눈길이 자꾸만 짧은 치마를 입고 옆에 앉은 인정의 다리를 흘끔거린다.

 

"교수님, 빨간 불인데요." "괜찮아, 이런 곳에선 신호 지키는 게 바보야."

 

 

 

 

무엇이 급했던지 한적한 시골길에서 액셀을 밟던 영선은 그만 교통경찰 문재(한석규)에게 걸려 딱지를 뗀다.

 

첨엔 교통신호를 위반하지 않았다며 잡아떼던 영선은 문재가 동영상을 보여주자 싼 걸로 끊어 달라고 사정을 한다.

 

하지만 문재가 안전벨트 미착용까지 지적하자 영선은 한국경찰은 이래서 안 된다며 은근히 외국물 먹은 티를 낸다.

 

인적이 드문 강가에 차를 세운 영선은 인정을 향해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고 인정은 가까스로 봉변의 위기를 벗어나 산 속으로 달음질친다.

 

 

 

 

차 안에서 인정을 기다리던 영선은 살짝 맛이 간 오근(오달수) 등 삼겹살을 구워 먹으러 온 동네 양아치들을 만난다. 짙은 선팅을 한 차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던 영선은 건달들이 차를 훼손하려 하자 밖으로 나와 짐짓 여유를 부려본다. 하지만 이내 속내를 간파당하고 건달들에게 희롱 당하는 처지가 된다.

 

한편 겨우 마을로 내려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시골 청년 봉연(이문식)을 만난 인정은 터미널까지 좀 태워 달라고 사정을 한다. 그런데 봉연이 데려간 곳은 인정이 달아났던 바로 그 곳. 봉연은 동네 양아치들의 우두머리였던 것이다.

 

 

 

 

어색하게 다시 만난 영선과 인정은 서로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서울에서 온 것을 안 봉연은 인정에게 자신과 영선 가운데 누구랑 가겠냐고 묻는다.

 

영선에게 큰 일 날 뻔했으면서도 인정이 선택한 것은 영선. 엷은 미소를 감추지 못하던 영선은 봉연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감사하냐는 봉연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영선.

 

그 때까지 비교적 친절하게 이방인을 대하던 봉연은 돌연 태도를 바꿔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무엇이 시골 청년을 변하게 만들었을까?

 

서울 아가씨에게 무시당한 것에 대한 분노?

 

영선의 차에서 인정의 신분증을 발견한 봉연은 자신에게 구조를 청한 인정과 영선 사이에 벌어진 일을 짐작한다.

 

인정의 눈에 자신은 흉측한 대학교수 영선보다 못한 존재일까?

 

봉연은 늘 자신의 무리에게 무시당하는 고등학생 현재(김시후)와 영선 가운데 싸워 이기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고 졸개들은 인정을 범하려고 한다.

 

 

 

 

하지만 봉연 일당은 현재에게 처절하게 응징당하고 이 틈을 타고 달아난 영선은 다시 만난 경찰관 문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건달들이 내 차를 부수고 있어요.." 인정과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이 밝혀질까 봐 사건의 핵심은 빼고 말하는 영선.

 

그런 영선을 태우고 문재는 사건 현장에 가보지만 이미 주위는 깨끗이 정돈된 뒤였다.

 

한눈을 파는 틈을 노려 현재를 다시 제압한 봉연 무리는 현재가 죽은 것으로 오해하고 벤츠 트렁크에 싣고 달아나다 그만 전복된다.

 

우연히 사고 현장을 목격한 문재는 수습에 들어간다. 하지만 바로 이 시점부터 이야기는 예기치 못했던 방향으로 뒤틀린다.

 

 

 

 

원신연 감독의 '구타유발자들'(2006)은 맞는 자와 때리는 자가 뒤섞이는 폭력의 순환 속에서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를 묻는다.

 

폭력의 가장 큰 특징은 더 큰 폭력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이다. 지위를 이용해 제자인 인정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려던 영선은 시골 양아치들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가 된다. 마음껏 영선을 희롱하던 양아치들의 우두머리 봉연은 학창 시절 문재에게 심한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

 

사고 현장에서 피투성이가 된 동생 현재의 모습을 발견한 문재는 봉연을 죽도록 패지만 길들여진 봉연은 반항하지 못한다. 때린 놈이 경찰이 되어 맞고 자란 놈을 또 때리는 세상, 폭력은 공평하지 못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사 그러하지 아니한가?

 

문재에게 학대를 당한 봉연은 동생인 현재에게 앙갚음함으로써 폭력을 대물림한다. 폭력은 복수의 수단일지라도 정의롭지 못하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문재와 그 대칭점에 있는 인정의 엇갈리는 운명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돌고도는 이 세상 도대체 정답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원신연 감독의 두번째 장편인 구타유발자들은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하지만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들의 호불호가 엇갈리면서 흥행에는 실패했다.​​

 

폭력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한 봉연 역의 이문식이 보여준 선과 악이 교차되는 표정 연기는 일품이다.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