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폭력탐구 2015. 8. 15. 14:00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 폭력의 섬

 

은행에서 일하는 해원(지성원)은 휴가를 내고 어렸을 적 친구 복남이(서영희)가 있는 고향 무도로 떠난다. 이제는 특별한 연고도 없는 고향을 딱히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회사 생활에 지쳐갈 때 그동안 한번도 뜯어보지 않은 복남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을이라고 해야 고작 십여 명의 주민도 남지 않은 외딴 섬.

 

섬에서 가장 젊은 여자인 복남은 남편과 시동생 그리고 딸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복남의 가족 외에는 노인들만 사는 고향. 해원의 등장은 낯선 사람이 그리운 섬마을 사람들에게 큰 관심이었다.

 

그러면서도 해원에게 친절하지만은 않은 섬 사람들.

 

이 조그마한 섬에서 복남은 그동안 어떻게 견뎌왔던 것일까?

 

제일 먼저 충격적이었던 것은 복남의 열살 된 딸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요즘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는 집이 어디 있나?'

 

복남이 말로는 남편이 계집애 가르쳐서 뭐 하냐고 한다는 것이다. 하긴 학교를 보내려면 섬을 떠나야 할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왜 섬에 갇혀 있는 것일까?

 

알고 보니 섬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완전한 생활체였다. 육지와 교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섬사람들은 섬에서 생산되는 것을 먹고 살아간다.

 

식의주 모든 것을 섬에서 해결하는 사람들.

 

그런데 복남은 해원에게 서울에 데려가 달라고 사정을 한다. 해원 역시 복남에게 왜 이런 데서 사느냐고 말하지만 적극적으로 복남을 데려갈 의사는 없다.

 

'서울? 너 서울 생활이 얼마나 힘든 줄 아니?'

'그럼 우리 연희 만이라도 어떻게 안될까?'

'?'

'아빠가 애한테 그 짓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무도는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조그만 섬이었다.

 

 

 

 

복남 역시 남편은 물론 시동생의 성적 노리개였다. 때로 남편이 뭍에서 데려온 여자랑 재미를 볼 때 복남은 태연히 밥을 먹기도 했다.

 

섬 사람들은 법이란 처한 현실에 따라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육지의 법은 육지의 법일 뿐이며 무도의 주민들에게는 육지의 법보다 강한 관습이란 게 존재했다.

 

어느 날 해원이 자신의 편지를 받고 내려온 것이 아님을 안 복남은 언젠가 남편을 따라 왔던 육지의 다방 아가씨에게 연락하여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한다.

 

하지만 비밀이 없는 이 섬에서 아니 섬 전체가 감옥같은 무도에서 복남의 계획은 너무나 쉽게 탄로가 나고 해원은 복남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목격하게 되는데..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감독 장철수, 2010)은 고립된 섬에서 일어나는 한 여성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폭력을 그린 작품이다.

 

복남은 지속적이고 집요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피해자인 복남 이외에는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자신들이 폭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폭력은 이기적이다.

 

마을 사람들은 법이란 처한 현실에 따라 다른 것이라는 믿음을 가짐으로써 복남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심지어 아버지인 복남의 남편이 어린 딸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만 특수한 상황인 만큼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섬의 아낙네들이라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대대로 그래왔듯이.

 

 

 

관습이라는 폭력에 익숙한 마을사람들이 해원이 섬에 들어왔을 때 관심을 두면서도 반기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노출될 걸 두려워해서다. 폭력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며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른 목소리를 들어주려하지 않는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건 마을사람들이 아니라 해원이다. 무도 출신인 그녀는 어렴풋이나마 복남이 처한 현실을 짐작한다. 그리고 복남의 남편에 의해 저질러지는 직접적이고도 명백한 폭력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복남의 처지를 동정하지만 복남을 구해주려 하지 않는다.

 

도대체 그녀는 왜 복남이를 외면한 것일까?

 

폭력에 대한 방관은 폭력을 키우는 영양제다. 결국 폭력을 방관하는 자는 간접적 가해자다. 무도 사람들 전부 미쳤다고? 그러나 일상의 폭력에 무감각하기는 도시 생활도 마찬가지다. 무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고도 신고조차 하지 않는 해원이 이상한 게 아니라 서울 여자 스타일대로 처신했을 뿐이다.

 

무도에서 끔찍한 일을 겪은 해원은 서울로 돌아온다. 그러고는 휴가를 내기 전 목격했던 폭력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증언한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개개인이 익명의 섬이다. 그제서야 해원은 깨닫는다. 그녀 자신이 바로 무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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