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폭력탐구 2015. 8. 18. 17:00

말죽거리 잔혹사 / 그 시절의 미니어처

 

 

근래에 개봉한 우리영화 가운데 썩 잘 만든 작품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는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2004)'7080세대의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1978, 가족을 따라 말죽거리 근방으로 이사한 현수(권상우)는 정문고등학교로 전학 온다. 정문고등학교는 학생과 학생 사이의 폭력과 교사의 학생에 대한 폭력으로 악명 높은 학교.

 

뛰어난 농구실력으로 학년 '쌈짱' 우식(이정진)과 절친한 사이가 된 현수는 통학 버스에서 한 학년 위인 졸업반 은주(한가인)를 보고 한 눈에 반한다.

 

어느 날 하교길에 우식과 함께 버스에 오른 현수는 상급생들에게 희롱당하는 은주를 구하려다 쫓기게 되고 우식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은주와의 인연은 시작되지만 은주의 마음은 남자답고 씩씩한 우식에게로 향한다.

 

은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현수는 비가 내리는 날 은주가 다니던 학원을 찾았다가 비를 피해 자신의 우산 속으로 뛰어 들어오는 은주를 만나게 되지만 은주는 여전히 현수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자신의 우산을 은주에게 건네는 현수. 퍼붓는 소나기에도 현수의 마음은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현수가 은주에게 건넸던 우산은 우식을 통해 현수에게 건네지고 우식은 은주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그토록 염원하지만 얻지 못하던 은주의 마음을 우식은 너무나도 쉽게 빼앗은 것이다.

 

우식의 생일날 '고고장'에서 입맞춤을 나누는 우식과 은주를 바라보던 현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뛰어 나와 자주 들리던 떡볶이집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주인 아줌마(김부선)에게 육체적 농락을 당하는 현수.

 

한편 은주는 우식의 불량스런 태도에 실망하게 되고 현수의 마음을 알기 시작한다. 우식이 은주에게 선물한 만년필을 우식에게 전해주다 크게 주먹다짐을 벌인 우식과 현수.

 

 

신경이 날카로워진 우식은 '쌈짱' 자리를 놓고 선도부원인 종혁(차종훈)과 대결을 벌이지만 종혁 일파의 비열한 공격에 무릎을 꿇고 학교를 떠난다.

 

이후로 우식이 은주와 더불어 가출했다는 소문만 들리는 가운데 현수는 둘을 만나지 못한다.

 

우식이 떠난 뒤로 종혁 일파의 세상이 되어버린 학교. 평소 우식과 어울리던 현수를 곱지 않은 시각으로 봐두었던 종혁과 현수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흐른다.

 

전학 온 이후 성적이 크게 하락해서 태권도 사범인 아버지(천호진)에게 꾸지람을 들은 현수는 이소룡의 '절권도의 길'이야말로 자신이 갈 길임을 깨닫고 종혁과의 일전을 위해 착실히 몸을 만들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기회는 왔다. 현수네 반에 들어와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던 종혁에게 현수는 붙어 볼 것을 제의한다.

 

1년 뒤 검정고시 학원에서 대입을 준비하던 현수는 버스에서 우연히 은주와 마주치지만 별다른 말도 붙여보지 못한 채 헤어진다.

 

 

개발시대의 강남일대를 배경으로 현수와 우식의 우정 그리고 은주와의 삼각관계를 한 폭의 풍경화처럼 스크린에 담아낸 '말죽거리 잔혹사'708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다.

 

미쳐 보도블록도 깔리지 않은 버스 정류장의 황량한 모습과 주택 사이사이의 나대지 그리고 비죽비죽 올라가기 시작하는 고층 아파트와 추억의 포니 택시.

 

역시 7080세대인 감독은 막 개발이 시작되던 때의 강남일대 분위기를 스크린에 재현하려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강남은 개발시대를 상징하는 코드다.

 

뿐만 아니라 모리스 앨버트의 '필링(Feeling)'과 진추하의 '원 썸머 나잇(One Summer Night)' 에럽션의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 등 제목만 들어도 70년대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선율은 영화의 묘미를 배가한다.

 

 

조연들의 활약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관객들을 70년대 후반의 학원으로 끌어가는 힘은 주연들에게서가 아니라 극중 교사들과 햄버거(박효준)같은 조연들의 리얼리티로부터 나온다.

 

이들은 관객 모두의 옛 은사요, 친구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담아내고 있는 것은 시대적 풍경만은 아니다. 영화는 학원을 무대로 그 시절 우리의 모습을 희화화하고 있는 것이다.

 

종혁 일파를 쓰러트린 현수는 피투성이가 된 채 이렇게 외친다.

 

대한민국 학교, 다 좆까라 그래!”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