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폭력탐구 2015. 1. 29. 21:00

위플래쉬 / 관객의 심장을 두들기는 드럼 비트

영화 위플래쉬를 보고 나오는데 느닷없이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0184, 다저 스타디움에서는 홈팀 LA다저스의 박찬호와 원정팀인 시카고 커브스의 케리 우드의 선발 대결이 벌어졌다.

 

당시 이 경기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파이어볼러 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두 선발투수는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팽팽한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케리 우드는 꾸준히 97~98마일을 찍으면서 LA 타선을 압도했으며 박찬호도 이에 뒤질세라 95~96 마일의 광속구를 뿌리며 시카고 타선을 농락했다.

 

이 경기를 중계한 미국 방송의 한 해설자는 이닝을 더 할수록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지는 박찬호를 가리켜 자신도 더 빠르게 던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듯 점점 구속을 끌어올리고 있네요라고 말했다.

 

자존심 강한 박찬호에게 케리 우드라는 영건의 등장은 좋은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다.

 

별은 스스로 빛나지 못하며 어둠이 있어 빛이 있는 것이다. 어두울수록 빛은 더욱 밝게 빛난다. 어둠은 빛을 밝히는 존재다.

 

 

단돈 33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한 영화 한편이 극장가를 난타하고 있다. 그 이름 생소한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whiplash).

 

최고의 재즈 드러머를 지향하는 음악학교 학생과 그를 지도하는 교수간의 극한 대립을 그린 이 작품은 최고 권위의 독립영화제인 2014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플래처 교수역의 JK 시몬즈는 2015년 골든 글로브를 비롯 무려 스물아홉 개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 트로피를 쓸어 담았다.

 

2015 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을 비롯 남우조연상 등 5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플래처 교수는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 단원들에게 때로는 인격적 모독도 서슴지 않는 악마 같은 존재다. 백업 드러머로 플래처 교수의 밴드에 합류한 앤드류(마일즈 텔러)는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플래처의 학대를 견디고 피나는 연습 끝에 드러머 자리를 꿰찬다.

 

하지만 플래처 교수의 지도 방식은 단원들 간의 끝없는 경쟁을 통해 밴드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었고 이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전력도 있다.

 

 

플래처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유해한 말은 바로 굿 잡'(There are no two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more harmful than good job)이라며 단원들을 몰아붙인다.

 

보통의 영화 같으면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치고 인간승리한 앤드류와 플래처 교수의 화해라는 드라마를 끌어내겠지만 '위플래쉬'는 끝까지 마치 마주보고 질주하는 두 대의 자동차처럼 정지선이 없는 두 사람 간의 대결을 연출한다.

 

차선과 차악 또는 차선과 차선의 대결이라는 세상의 보편성을 비웃으며 절대선()과 절대선() 또는 선과 악의 대결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위플래쉬'는 음악 영화의 외양을 두른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고감도 스릴러다.

 

위플래쉬(whiplash)의 사전적 의미는 채찍질이라는 뜻이지만 영화 속의 밴드가 연주하는 곡목이기도 하다.

 

플래처 교수의 끝없는 채찍질이 없었더라면 관객의 심장을 두들기는 앤드류의 드럼 비트도 없었을 것이다.

 

크레딧이 다 올라간 다음에도 도저히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자신은 물론 타인의 한계까지 딛고 서 빛과 어둠,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문 새로운 세상이 적막 속에 펼쳐져 있었다.

 

 

2015.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