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22. 10. 5. 17:11

고교 명랑교실 / 말죽거리가 잔혹하던 시절, 목포의 한 고교에서는

 

혹시 이승현이라는 배우를 기억하십니까? 사실상 배우 활동을 접은 지 30년이 넘은 만큼 요즘 영화 팬들은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습니다만, 1970년대 후반 얄개 시리즈로 크게 인기를 얻은 배우였습니다.

 

얄개 시리즈는 조흔파의 명랑 소설인 ‘얄개전’을 원작으로 해서 파생된 시리즈 물인데, ‘얄개전’은 조흔파가 1950년대에 집필한 소년문학이지만 수십 년간 생명력을 유지하며 오십 대 이상은 한 번쯤 들어보거나 읽은 적이 있을 베스트셀러입니다.

 

저도 1970년대 후반에 ‘얄개전’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무렵 영화화되어 무려 스무 편이 넘는 유사 제품이 탄생할 만큼 커다란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몇 년 새 제작된 이십여 편의 주인공은 이승현이라는 청춘스타 한 사람이었으니 그 당시 이 배우의 인기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죠.

 

소개해드리는 작품은 1978년 상영된 ‘고교 명랑교실’(감독 김응천)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에도 소질이 있는 승현(배우의 인기에 기댄 작품인 만큼 이승현이 아예 실명으로 출연합니다)은 서울에서 할아버지가 재단 이사장인 목포의 한 고등학교로 전학을 옵니다. 새 학교에서 쌈장 삼육(이동진)을 만난 승현은 신고식에서 뛰어난 격파 실력을 보여 곧 삼육과 절친이 됩니다.

 

자신이 재단 이사장의 손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삼육이 패거리들과 어울려 다니던 승현은 여고생 진희(이옥미)를 보고 그만 한눈에 뽕갑니다.

 

승현 패거리를 통해 진희가 만두집 딸이라는 사실을 안 승현은 진희와 친구가 되기 위해 함께 봉사활동도 하고 만두도 만듭니다. 하지만 진희와 가까워진 만큼 삼육이와 거리가 멀어진 승현은 친구냐 여자냐를 두고 갈등하고 결국 삼육과 한판 크게 붙고 맙니다.

 

결국 싸움이 문제가 되어 문제아인 삼육이 퇴학 처분을 받기 직전, 승현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재단이사장 할아버지가 나타나 사건을 무마하고 승현과 삼육은 다시 절친으로 돌아갑니다.

 

영화는 고교 마라톤 대회에 함께 출전한 승현과 삼육이 1등과 3등으로 테이프를 끊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나란히 선두로 달리다가 지친 삼육이 끝까지 함께 달리자는 승현이에게 먼저 가라고 하고 그 결과 승현이 1등을 차지하는데, 순위에 들지 못하더라도 둘이 함께 들어오는 것으로 처리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영화의 결말은 한편으로는 당시(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일등주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두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결말은 클리셰가 아닌가도 싶습니다.

 

‘고교 명랑교실’은 25년 뒤에 제작된 ‘말죽거리 잔혹사’와 시공간적 배경이 동일합니다.(말죽거리 잔혹사도 1978년의 남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런데 1978년에 만든 영화보다 1978년을 배경으로 2000년대에 제작한 영화가 당시의 상황을 더욱 실감 나게 전합니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제작된 2003년은 우리 사회가 이미 민주화된 시기라 유신 시대의 폭력적 상황을 가감 없이 그릴 수 있었지만, 유신 체제에서 제작된 ‘고교 명랑교실’은 표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 ‘고교 명랑교실’이 얄개 시리즈와의 연계성을 위해 처음부터 명랑 드라마로 기획된 탓도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당시를 그대로 잘 나타낸 건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산울림의 ‘아니 벌써’와 승현과 삼육이가 코믹송으로 부르는 간첩 신고는 국번 없이 114 정도입니다. 삼육이는 고향에 약혼자(임예진)가 있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1970년대 후반에 고교생이 약혼자가 있다는 설정은 많이 오버입니다. ㅎㅎ

 

영화의 여주인공을 맡은 이옥미는 알려지지 않은 배우인데 다른 얄개 시리즈에서 이승현의 파트너로 단골 출연하며 인기를 얻은 강주희보다 외모는 더욱 뛰어난 것 같습니다.

 

얄개 시리즈는 주인공인 이승현 씨의 성장에 맞춰 1980년대 이후에는 ‘대학 얄개’와 ‘회사 얄개’ 등으로 변모를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했으며 하이틴 스타 이승현 씨도 알맞은 배역을 찾지 못하고 아쉽게도 그만 잊힌 배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찍이 십 대에 커다란 성공을 얻었으나 이후 유학 실패, 사업 실패, 결혼 실패 등의 시련을 겪은 영원한 얄개 이승현 씨는 지금은 어느 시골에서 재혼한 부인과 음식점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202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