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폭력탐구 2015. 8. 18. 21:00

비열한 거리

조폭의 새끼 보스 병두(조인성)에게는 '식구'가 많다. 그에게는 병든 어머니와 동네 양아치 남동생이 있으며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도 있다.

 

허름한 그의 집은 곧 헐릴 예정이다. 어머니는 아픈 몸으로 철거반원들에 맞서 싸우다 병만 더 깊어진다. 보상금으로 받은 돈은 동생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합의금으로 날렸다. 이제 병두 가족은 발을 뻗고 누울 자리도 없이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또 그를 '형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여남은 명의 '동생'들도 보살펴야 한다. 한번 폼나게 살아 보려면 좋은 '스폰'(스폰서)을 만나야 하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병두는 중간 보스 상철의 요구로 남의 집에 들어가 악날한 방법으로 빚을 받아 오기도 하지만 그에게 떨어지는 몫은 많지 않다.

 

 

병두는 어느 날 아주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인 민호(남궁민)를 만난다. 영화감독 지망생인 민호는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사를 찾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그는 조폭 영화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 민호에게 동창생 병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취재원이다.

 

민호에게 이끌려 동창 모임에 나간 병두는 첫사랑 현주(이보영)와 조우한다. 민호로부터 병두가 하는 일에 대해 들은 현주는 병두를 경계하면서도 거부하지 못한다. 

 

 

조직의 보스인 황회장(천호진)은 박검사 때문에 골치다. 그는 상철에게 박검사를 처리할 것을 넌지시 얘기하지만 상철은 자신 없어 한다.

 

병두는 상철이 개업한 성인오락실의 관리를 자신에게 맡길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마저도 다른 '패밀리'에게 빼앗긴다.

 

황회장을 에스코트한 어느 날 병두는 말한다. “그 검사 명함 좀 주시겠습니까?”

 

출세하려면 딱 두가지만 알면 돼.  내게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 

 

그날 이후 '회장님''형님'으로 바꿔 부르게 된 병두. 황회장과 자신의 관계를 상철이 눈치채자 그는 선수를 쳐 상철을 처리해 버린다. 

 

황회장의 심복이 된 병두는 각종 이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황회장의 신임을 깊이 얻는다. 이제 현주의 사랑만 있으면 부러울 게 없다.

 

민호는 병두의 도움으로 조폭 영화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제작자는 크게 반긴다. 병두의 친구가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황회장은 자신의 딸을 출연시킬 것을 요구한다.

 

병두의 사랑이 익어갈 즈음 민호의 영화는 대박을 터뜨린다.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 민호는 병두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로 옮긴 것이다. 어차피 영화란 허구의 세계가 아닌가. 민호는 '대부''스카페이스'를 보며 영감을 얻는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둘러 대지만 황회장은 민호를 처리할 것을 병두에게 지시한다.

 

그러나 병두가 차마 '작업'에 이르지 못하고 입단속에 그치자 동생 종수(진구)는 크게 반발한다.

 

"형님이 못하면 나라도 하겠소."

 

민호를 납치한 종수는 단단히 '단도리'한 후 풀어 준다.

 

"병두 형님이 살려 주는 거요. 이제 한 식구라는 걸 잊지 마시오."

 

목숨에 위험을 느낀 민호는 그만 병두의 범행을 경찰에 털어 놓는다.

 

"형님, 만약 제가 잘 못 돼더라도 형님 이야기는 꺼내지 않겠습니다. 민호를 단도리하고 잠수탈 터이니 약속하신 제 몫은 챙겨 주시죠."

 

황회장과 담판을 짓고 민호를 처리하기 위해 동생들을 푸는 병두.

 

"형님, 잡았습니다."

 

이윽고 동생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한 병두. 하지만 종수의 사시미 칼은 병두를 겨누는데..

 

 

Epilogue

 

황회장과 민호, 종수가 룸살롱에 앉아 있다.

 

황회장 : "종수야 너 김감독 알지?"

 

종수 : ", 압니다요. 형님."

 

황회장 : "김감독, 다음 번엔 내 연애담을 가지고 한번 만들어 보지 그래. 하지만 너무 똑같이 만들어선 안돼. 마누라가 눈치챌 수도 있단 말야. 허허.."

 

민호 : "...."

 

황회장 : "내 노래 한번 들어 보겠나. 뜻이 아주 기가 막히단 말야.."

 

Old And Wise / The Alan Parsons Project

 

As far as my eyes can see

 

There are shadows approaching me

 

And to those I left behind

 

I wanted you to know

 

You've always shared my deepest thoughts

 

You follow where I go

 

And oh when I'm old and wise~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2006)는 앞만 보고 무모한 질주를 거듭하는 어느 비열한 조폭의 일생을 다룬 이야기다.

 

주인공 병두는 자신이 3류 건달이면서도 동네 양아치 세계를 기웃하는 동생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철거민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재개발 대상 지역 주민들을 찾아가 집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폭력의 이면에 폭력은 없다.

 

 

마지막 부분의 대반전은 그저 그런 조폭이야기를 흔하지 않은 갱스터 무비로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반전이 힘을 받으려면 구성이 탄탄해야 한다.

 

민호와 병두, 누가 누구를 배신했을까? 민호는 병두로부터 들은 고백(검사 살해)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끝내는 경찰에 모든 것을 털어 놓는다.

 

조연인 민호가 영화를 흐름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민호의 가벼운 처신은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의 가벼운 처신은 이미 예정돼 있던 결과다. 그는 현주에게 해서는 안 되는 병두가 하는 일을 누설한 전력이 있는 사내다.

 

반면 병두는 끝내 민호를 배신하지 못한다. 마지막에는 배신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병두와 상철의 관계, 상철과 황회장의 관계, 황회장과 박검사의 관계, 병두와 종수의 관계가 보여주듯 이 영화에서 배신은 삶과 죽음의 사이에 있다. 배신해서 삶의 울타리를 넘을 것인가? 배신 당해 죽음의 울타리를 넘을 것인가?

 

극적으로 엇갈린 병두와 민호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마법. 이 영화의 힘은 세다.

 

생과 사, 어느 울타리를 넘을 것인가?

 

주인공 병두 역을 맡은 조인성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그는 선한 아들이고 오빠이자 비열한 조폭이다. 그의 얼굴에는 폭력성과 그 이면의 세계가 겹쳐진다. 현주 역의 이보영은 딱 주어진 만큼의 연기를 소화해 냈다.

 

반면 민호 역의 남궁민은 자신의 배역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햄버거 역으로 떴던 박효준은 비중이 축소되었다. 조연들의 연기가 영화를 받치지 못한 점은 아쉬운 점이다.

 

 

블루 하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