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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묵시록 / 폭력에 대한 우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은 전쟁의 대서사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는 전쟁의 희비극적 요소가 모두 들어가 있죠. 전쟁이 비극적 요소만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쟁은 그 자체가 인간 광기가 벌이는 희극이기도 합니다.
베트남전이 한창인 1960년대 말. 미 육군 특수부대의 윌라드 대위(마틴 쉰)는 특별한 명령을 받습니다.
그것은 미군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캄보디아의 정글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을 제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때 미 육군이 배출한 최고의 군인이었던 커츠 대령은 베트남과 베트공의 이중 스파이 용의자를 임의로 사살하고 군수사기관의 추적을 받던 중 부하들과 함께 캄보디아의 정글로 들어가 독자 세력화한 것입니다.
요원을 구성해 커츠 대령의 기지를 찾아가던 윌라드는 전쟁의 다양성을 목격합니다.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흐르는 넝강을 따라 가다 만난 킬고어 대령(로버트 듀발)은 전쟁이 어떤 사람에게는 한낱 유흥거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베트공 마을을 폭격하는 헬기에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을 틀어놓고 선율을 즐기는 인간입니다. 공중에서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바그너의 음악과 폭격을 당해 쑥밭이 된 지상의 아비규환은 전쟁의 희비극을 선명하게 콘트라스트합니다. 누군가의 희극이 다른 사람에게는 비극이 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조연이긴 하지만 킬고어 대령이라는 인물은 사실상 이 영화에서 독자적인 세력화에 성공한 캐릭터입니다. 그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전쟁의 희비극 중 희극 파트를 담당했습니다.
킬고어 대령은 공습 이후 베트공 여인이 부상당한 어린아이를 안고 와서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의료용 헬기에 태워 후송하라고 지시하죠. 그런가하면 심한 부상을 당해 신음하는 베트공이 물 좀 달라고 하자 수통의 물을 주려하다가 자신이 즐기는 서핑을 잘하는 병사가 왔다는 전갈에 물을 쏟으며 돌아서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동정도 자신의 만족을 위한 즐길 거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반면 좁은 수로에서 베트공 양민을 만난 윌라드의 부하들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총을 난사해 버립니다. 윌라드는 부하 가운데 한명이 죽어가는 베트공 소녀를 후송시키자고 하자 가차 없이 소녀를 사살합니다. 도대체 전쟁이란 무엇일까요?
윌라드 일행은 커츠를 찾아가던 중 여전히 베트남에 남아 있는 프랑스인들을 만납니다.(베트남은 한 때 프랑스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들의 농장에 머문 윌라드는 농장주로부터 전쟁의 원인이 미국에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프랑스를 몰아내려 베트남의 공산주의를 키워놓고는 이제 와서 프랑스의 자리를 대신하려 든다는 거죠.
배우의 내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게 아쉽지만 이 대목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베트남전에 대한 비판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입니다.
이와 같이 전쟁의 갖가지 모습을 목격한 후에 윌라드 대위는 드디어 커츠 대령의 기지를 찾아냅니다. 이상한 것은 윌라드에 앞서 커츠 대령을 찾은 이들이 모두 커츠 대령에게 가담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커츠 대령은 어떤 인물일까요?
며칠 갇혀있긴 했지만 이후로 윌라드는 행동의 자유를 보장 받습니다. 윌라드가 왜 자신을 찾았는지를 잘 아는 커츠 대령은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심판할 수는 없다(You have a right to kill me. But you have no right to judge me)는 유명한 말을 윌라드에게 하며 자신이 캄보디아의 밀림으로 들어온 계기를 말해 줍니다.
전쟁의 광기를 말한 커츠의 고백에는 베트남전을 넘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반전사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1979년 작인 ‘지옥의 묵시록’은 전 세계적으로 그 해 개봉하여 찬사를 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십년이 지난 1988년에서야 개봉되었습니다. 학원가의 반미감정이 극에 달했던 시절, 아마 미군의 베트남전 개입에 대한 비판이 6.25 참전에 대한 비판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한 군사 정권의 판단 때문으로 추측해봅니다.
이 리뷰는 2001년 소개된 리덕스(Redux)판을 기본으로 한 것입니다. 오리지널 버전에 비해 약 50분 분량이 늘어났다는 리덕스 버전에는 위문 공연차 베트남을 방문했던 바니걸들과 윌라드의 부하들이 정사를 벌이는 장면, 농장에서 머문 윌라드 대위가 프랑스 여인과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장면, 커츠 대령이 윌라드에게 타임지를 읽어주는 장면 등이 추가되었다고 하는데 오리지널 버전을 본지 거의 삼십 년 만에 리덕스 버전을 봐서 그런지 그런가보다 한다는.. 암튼 배우들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흠이 있지만 리덕스 버전에서 추가된 장면들은 영화의 주제를 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존재하는 가장 큰 폭력이라면 ‘지옥의 묵시록’은 폭력에 대한 우화입니다. 폭력이란 결국 힘 있는 놈이 힘 없는 놈 괴롭히고 때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 폭력이 어쩌면 두려움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는 걸 전쟁은 잘 보여줍니다. 커츠 대령의 선택은 어쩌면 그 두려움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을까요?
PS : 네이버에는 이 작품의 국내개봉 연도가 1998년으로 되어 있어 이상하다 생각하고 IMDB를 찾아봤더니 역시나 1988년이더라는.. 참 대단한 네이버가 아니라 IMDB 아닙니까?
블루 하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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