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스릴러 2015. 9. 2. 22:20

차일드 44 / 권력이 믿는 것이 진실이다?

 

수 년 전 현대차 로비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검찰은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진실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며 덮여질 수도 있는 것일까요?

 

구소련에서 일어난 연쇄 살해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차일드 44’(감독 : 다니엘 에스피노사)를 보며 쓰는 이는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체인질링’(Changeling, 2008)이 떠올랐습니다.

 

▲ 영화 '체인질링'(Changeling)의 한 장면

 

LA경찰의 부패가 극에 달했다는 1920년대. 한 어머니의 미아신고를 받은 경찰은 몇 개월 후 아이를 찾았다며 엉뚱한 아이를 어머니에게 데려가라고 한다. 내 아이가 아니라고 하자 경찰은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를 도리어 정신이상자 취급을 하며 수용소에 가둔다. 경찰은 마음만 먹으면 남의 아이까지 바꿀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와 같이 권력이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나 그들이 믿는 것이 바로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1950년대의 구소련 사회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스탈린 체제의 소비에트 연방은 천국에는 살인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살인이란 자본주의적인 범죄이며 따라서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에는 살인이 발생할 수 없다는 논리였죠.

 

그런데 이러한 삼단논법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공산당 정권은 어떻게 해서든 살인을 막든가 발생한 살인을 덮어야 소비에트 연방을 천국이라고 지속적으로 선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쇄 아동 살인사건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1953. 당시 소련의 비밀경찰인 MGB(국가보안부, KGB의 전신) 소속 레오(톰 하디)의 친구 아들이 기찻길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수사당국은 소년이 기차에 치어 숨진 것으로 하고 사건을 서둘러 종결한다. 그러나 유사한 사건이 이어지자 레오는 사고사가 아니라 살인사건이라고 확신한다.

 

 

차일드 44’의 기둥 줄거리는 꽤 단순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도 뚜렷하죠. (권력에 의해) 진실이 은폐되거나 만들어질 수 있느냐는 거죠. 영화는 진실 게임을 벌이는 레오의 위기를 보여주며 긴장감을 고조합니다. 권력은 새로운 진실을 원치 않으며 이 과정에서 레오의 수난은 필수입니다.

 

문제는 클리셰 수준의 구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화가 술술 읽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차일드 44’는 진실이 은폐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강조하고자 구소련의 압제를 보여주고 공포 분위기를 고조합니다. 그런데 그저 멀리서 냄새만 풍겨도 될 일을 상까지 차려 내놓으니 정작 레오의 진실 찾기에 젓가락이 자주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차일드 44’는 범행 동기와 (권력에 의해) 은폐되는 과정 그리고 진실을 찾는 주인공의 위기 등 최상급의 소재를 가진 작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김상중 멘트 ). 감독은 이 가운데 관객의 궁금증을 폭발시키는 범행 원인을 그만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수준으로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진위 여부를 떠나 이야기가 물위의 기름처럼 떠서 메인 스트림에 녹아들지 않더군요. 차라리 구소련의 폭정 부분을 줄이고 서프라이즈한 이야기를 영화답게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서프라이즈의 내용은 극장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앞서 말했듯 작품은 앞서 구소련에서 발생했다는 안드레이 치카틸로라는 살인마의 범행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대도 다르고 영화 자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영화와는 달리 실제 소련에서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3천명의 경찰 병력을 투입했다고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