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상영관 2015. 9. 4. 09:43

어바웃 리키 / 콩가루 집안, 록(Rock)으로 하나 되다

 

 

로커의 인생은 어떤 것일까요?

 

수천, 수만 명의 구름 관중 앞에서 폼 나게 기타를 치고 목청껏 자작곡을 부르며 말 한 마디와 행동거지가 미디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인생일까요?

 

물론 이런 인생도 로커의 인생이긴 합니다만 실은 이렇게 사는 로커들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로커들은 밤에는 작은 클럽들을 시간제로 전전하고 낮에는 아르바이트로 생활할지도 모르죠.

 

 

 

 

LA에서 활동하는 록 밴드 더 플래쉬의 리더 리키가 그랬습니다. 늦은 밤에는 자신의 밴드 더 플래쉬와 함께 작은 클럽에서 남의 노래나 부르고 낮에는 식료품점의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죠.

 

밤무대에 서는 무명의 록 밴드라 해서 더 플래쉬를 이십대의 팔팔한 청춘들로 구성된 밴드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멤버들의 연령은 무려 육십 대.

 

 

 

 

오래 전 록을 하기위해 가족들을 버렸던 리키는 어느 날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전 남편 피트의 전화를 받습니다. 시집 간 딸 줄리가 바람난 남편 때문에 폐인처럼 지낸다는 겁니다.

 

전화를 받고 고향을 찾지만 줄리는 리키에게 결혼식 때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더니 이혼한다고 하니까 나타나느냐고 타박합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들 조쉬와 동성애자인 아담 등도 오랜 만에 나타난 줄리가 못마땅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한마디로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리키와 줄리 가족.

 

메릴 스트립은 엄마는 엄마이되 엄마라 부르라고 할 수 없는 리키의 신세를 탁월하게 표현합니다. 왜 있잖아요.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입장.

 

이럴 때는 메릴 스트립의 섬세한 연기를 그저 탁월하다고 하는 저의 무딘 언어 감각이 아쉽군요.

 

영화 팬이기도 한 소설가 조성기(‘라하트 하헤렙이라는 정말로 탁월한작품이 있습니다)어둠 속의 외침’(1988, 메릴 스트립에게 칸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입니다)에 대한 평에서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좋은 영화라고 안심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의) 정신에 감응된다고 하더군요.

 

좋은 연기란 이처럼 정신이 감응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살 직전의 줄리의 기분을 겨우 전환시키고 다시 LA로 돌아가는 줄리. 리키의 딸 줄리 역은 실제 메릴 스트립의 친딸이기도 한 마미 검머가 연기를 했는데 캐릭터의 성격이 일관되질 못하더군요. 있잖아요. 이랬다저랬다, 자주 흔들리는 사람들. 하지만 이 영화는 메릴 스트립의 작품입니다. 다른 배역을 연구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리키는 더 플래쉬의 기타리스트인 그렉과 그렇고 그런 사이입니다. 동료이자 연인이라고 할까요?

 

1980년대의 슈퍼밴드인 블론디의 리드 싱어 데보라 해리와 밴드의 기타리스트 크리스 스태인이 실제로 연인 사이였다고 하죠. 영화의 설정이 이와 같더군요. 그런데 기타리스트 그렉 역할은 역시 1980년대의 슈퍼스타 가운데 한 사람인 릭 스프링필드가 출연해 주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릭 스프링필드는 로커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조연 연기자로서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수로서보다는 AFKN(미군방송인 AFKN이 당시에는 우리나라 공중파 채널 2번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을 통해 유명한 미드 제너럴 호스피탈의 닥터 노아 드레이크로 먼저 선을 보인 걸로 기억합니다. 한마디로 만능 엔터테이너였죠. 하지만 본업은 뮤지션입니다. 호주 출신인 릭 스프링필드는 미국에 진출하기 전 본국에서 밴드 활동을 했으며 미국에서도 가수로 먼저 알려졌죠. 연기는 부업, 무명 뮤지션의 생계 수단이었다고 할까요?

 

릭 스프링필드는 그렉이라는 인물에 적역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수준급의 기타 연주와 연기가 되는 육십 대의 배우가 그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1980년대의 스타들이 지금까지 활동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번에 릭 스프링필드를 스크린에서 보니 고마움을 넘어 눈물이 나려 하더군요. 넘 반가웠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는 릭의 연기보다는 기타리스트로 시작한 그의 훌륭한 연주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반면 영화 출연을 위해 따로 기타 연주를 배우기도 했다는 메릴 스트립의 연주 솜씨는 그냥 그렇다는 것이 제 평입니다. 하지만 연기자인 메릴 스트립에게 기타 연주를 기대해서는 안 되겠죠. 노래는 익히 알려진 대로 잘 부르더군요.

 

쓰다 보니 영화 리뷰가 아니라 개인 일기처럼 되었는데 암튼 어바웃 리키’, 좋은 음악과 메릴 스트립의 명품 연기를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앞서 말한 조성기씨는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 영화는 그녀와 연애를 하듯 본다고 했는데 아마 이 영화도 틀림없이 찾아 볼테죠.

 

, 영화 마무리 합니다. LA로 돌아간 리키는 아들 조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인디애나폴리스로 떠나야 하지만 그만 비행기 표 값을 구하지 못해 동동거립니다. 과연 그녀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을까요?

 

 

 

어바웃 리키’(Ricki and the Flash)는 콩가루 집안이 록(Rock)으로 하나 되는 이야기입니다. 유쾌하지만 이렇다 할 갈등이 없고 이야기의 흐름이 단선이라 다소 지루한 감도 들더군요.

 

양들의 침묵’(1991)의 조나단 드미가 연출을 하고 주노’(2007)를 쓴 디아블로 코디가 각본을 맡았습니다. 여기에 메릴 스트립 주연입니다. 아카데미에서 감독상과 각본상과 연기상을 수상한 별들이 모인 것입니다. 후덜덜하죠. 하지만 그들이 만든 영화치고는 평작 수준이라는 게 제 소견입니다. 메릴 스트립의 연기를 보고 정신적으로 감응된다는 조성기씨는 또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네요. ㅎㅎ

 

2015.9.4